ADVERTISEMENT

극한속 이데올로기와 휴머니즘|김원일 소설『겨울골짜기』 김옥섭<소설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노을』『불의 제전』 등을 발표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중견작가 김원일씨가 최근 펴낸 장편 『겨울 골까기』는 이 작가가 일관되게 천착해온 작품세계를 또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즉「6·25문학」「분단문학」「이산문학」의 계열로서 이른바 이데올로기 전쟁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우리 민족사에 남긴 굵직한 상처중의 하나인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어렵게 다루고 있다. 『6·25를 빌었지만 전쟁의 현장성을 전면으로 부각시키기보다는 추위·굶주림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상황을 어느 한계까지 견디어 내는가 하는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읍니다.』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승패보다는 고통당하는 민중논리랄까, 휴머니즘적 요소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3천5백장 분량의 『겨울 골까기』곳곳에는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가 진한 배경의 주조음을 이루며 대두된다.
「인민유격대의 참상내지 그들의 산생활을 용어나 노래까지 리얼하게 묘사하는데는 상당히 치밀한 사전조사와 현장답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에 대해 그는 밝힐 수 없는 어떤 자료의 도움임을 시인하면서 『그간 6·25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지나치게 픽션에 의지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번 장편은 상당부분 자료나 고증에 의거해 집필했읍니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작품의 시간대는 거창사건이 일어난 50년11월부터 51년1월까지 석달동안. 51년 사건 당시 막 출산한 아기 덕분에 천우신조로 살아난 한 가족이 그 중심뼈대를 이루고 있다.
거창군 신원면이 고향인 소년 병사 문한득이 315부대, 즉 팔로군 부대로 전출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조선인민 전체의 행복과 영광된 통일조국을 위해서는 동족끼리의 살상이 불가피하다」는 좌익주장에 대해 「높은 사람들 생각으로는 다른 좋은 꾀가 없는 모양」이라고 어림짐작하고 있는 열여덟살의 순수한 청년이다.
반면, 그가 팔로군 부대에서 만난 김익수는 작가가 『내가 그당시 거기 있었다면 바로 그런 인물이 되었을 것』이라고 할만큼 지식인의 대표적인 속성으로 전형화되어 있는 인물.
전쟁에 대한 증오와 인민군 생활의 페쇄성, 조직체에 대한 혐오등으로 「전쟁이란 다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 싸우게 되지만 그 명분이란게 바로 그럴싸한 정의의 탈을 쓴 짐승의 마음」이라고 분노하다가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은 염원도 이루지 못한 채 희생되고 만다.
총 6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문한득을 중심으로한 빨치산들의 생활과 실매댁과 문한돌 일가의 오지생활이 엇섞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이(슬)얘기가 징그러울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 등 젊은 여성들이 읽기에는 낯을 붉힐만한 장면과 대화가 꽤 많더라는 지적에 근엄한 교수 타이프의 작가 김원일씨는 목밑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수줍게 웃는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낯선 어휘들은 작가의 숨은 우리말 찾기 노력의 일환. 언뜻 생소해 보이지만 모두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나는 다방에서 여자 만나 차 마시고 하는 얘기는 써 본적이 없어요. 쓸 수도 없고요. 그건 내 소재가 아니다, 하는 느낌이예요』
그는 앞으로도 계속 분단문제에 천착하리라 한다. 그의 의식속에 6·25는 그가 점령해야할 문학적 고지로 험준한 겨울골짜기 처럼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