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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외풍」속 중립성 확보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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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권 확립을 위한 전기가 마련됐다. 법조계에서는 고시8회시대의 페막 과함께 새로 출범한 정해창법무장관·이종남검찰총장 체제는 검찰권을 확립해 실추된 공신력과 신뢰를 회복하는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수뇌부가 바뀌자마자 박종철군사건의 수사팀을 바꾸는 등 여론에 부응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국민들은 수뇌부 문책, 수사팀 교체등 박군사건의 부작용을 검찰이 깊이 반성하고 검찰권 독립·중립성을 확보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있다.
◇검찰권=검찰청법 4조에는 검찰권을 행사하는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로 규정하고 있다. 또 검사의 직무와 권한을 ▲범죄수사· 공소제기와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의 지휘·감독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 ▲재판집행의 지휘·감독 ▲국가상대 소송의 지휘·감독등으로 규정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범죄처리에 대한 국가공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기관이 검찰인 셈.
검찰은 행정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검찰권의 행사가 사회정의는 물론 인권과도 직곁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흔히 「준사법부」라 부르며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 기대하고 있다.
또 이같은 준사법적 기능 때문에 검찰은 다른 행정부처와 달리 제도적으로 법무장관·검찰총장이란 이완지휘 체계를 갖추고 있다.
행정부조직의 국무위원인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책임자로서 검사를 지휘·감독하지만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명문화되어 있다.
정치적 위치라 할수 있는 법무부장관과 달리 검찰총장은 정치적 압력이나 영향력등 「외풍」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 검찰권의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춰지다. 이때문에 특정사건에 관한 문제라 하더라도 국회의원의 질의에는 항상 법무부장관이 답변하며 검찰총장이 직접 국회에 참석하거나 의원질의에 답변하지않 는게 관례다.
◇임영신씨 사건=초대 상공부장관 임영신씨의 독직사건 처리는 검찰사에서 기념비적인 일로 남아있다.
49년4월4일 감찰위원회(위원장 정인보) 는 상공부장관이던 임씨가 48년5월 경북 안동에서 제현의원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선거비용 충당을 위해 5백40여만원의 공금을 횡령하고 뇌물을 받았으며 이승만대통령의 생일기념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관련업체에 기부금을 할당, 5백95만원을 거뒀다는 이유로 파면을 결의하고 이를 정부에 통고했다.
이에대해 임씨는 이틀후인 4월6일 서울고법에 파면결의 무효확인청구소송을 냈고 임씨를 총애하던 이대통령은『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파면시킬 수 없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화가 난 정인보감찰위원장과 박순천위원은 사표를 제출해 맞섰고 결국 정치문제로 비화된 것.
그러자 당시 서울지검 최대교검사장(초대) 은 강석복·박경재·이주영검사에게 이사건 수사착수를 지시했다. 검찰은 수사결과 상공부 공무원들과 함께 원조물자인 대두유 40드럼을 무자격자에게 부정배급하고 1백50여만원의 공금을 횡령했으며, 업자들에게 수입금지 품목의 수입허가 등 잇권을 주고 3백70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같은해 5월28일 임장관과 비서실장 황룡우씨등 19명(임씨등 9명은 불구속, 10명은 구속) 을 무더기로 기소해버렸다.
수사후에도 검찰은 임씨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고 고위공직자에 대한 기소는 법무부장관의 사전승인을 받으라고 압력을 받았으나 검찰 (검찰총장 권승렬) 은 끝까지 중립적 입장을 지켜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진행했다.
◇인혁당사건=64년8월 소위 인혁당사건의 도례종·양춘우등 41명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18일간 조사를 벌인 서울지검 공안부검사들은 이들이 혁신계 정당을 만들기 위해「인민혁명당」이란 지하서클을 조직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국가단체로 보기 어려운데다 북괴의 지령을 받았다는 점도 인정할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결정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 지휘부는 이들이 기초한 민족자주적 경화통일강령이 북괴의 위장통일방안과 부합된다며 모두 기소토록 지시했다. 검사들이 불기소의견을 계속 고집, 사건처리는 진통을 겪은 끝에 결국 같은해 9월5일 26명만 구속기소되고 15명은 불기소처분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사상범을 다루는 공안사건에서 일선검찰의 이같은 의견은 파격적인 일이었고 공소권 행사를 둘러싼 이같은 불협화음으로 9월9일 수사를 맡았던 이룡훈공안부장검사와 김병만·장원찬검사가 사표를 제출, 결국 검찰을 떠나야했다.
◇이·장사건=6천4백억원을 주물렀던 이·장사건은 국민들의 의혹을 완전히 물지 못했다는 점에서 검찰 수뇌부는 인사 태풍을 겪어야했다.
이·장부부는 물론 은행장2명, 기업경영주 2명과 사채업자등 32명을 기소하고 배후비호세력으로 이규광씨까지 구속기소했으나 수사결과를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자 정부는 이종원법무부장관을 경질, 정치근검찰총장을 총장 재임 5개월만에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으나 수습이 되지 않자 1개월만에 다시 배명인장관을 임명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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