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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민감한 2030 ‘메이드 인 중국’에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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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김진일(31)씨는 최근 스마트폰을 중국 화웨이의 P9(출고가 59만9500원)으로 바꿨다. 줄곧 국내 브랜드 를 썼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괜찮다”는 친구들 추천에 이번엔 마음을 바꿨다. 김씨는 “중국 브랜드에 대한 호불호가 딱히 없었는데, 이참에 따져보니 중국 기업 제품을 이미 많이 쓰고 있더라”고 말했다.

샤오미가 ‘싸구려 편견’ 깨자
제품·음식·쇼핑·게임·문화…
중국산 호감도 크게 높아져
자동차까지 한국 시장 데뷔
중국 내 ‘한한령’과 대조적

김씨는 주말엔 샤오미의 전동휠인 나인봇 미니를 타고, 삼국지를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 ‘삼국지 조조전’을 즐겨 한다. 최근엔 소녀시대 윤아가 출연했던 중국 드라마(중드)를 원작으로 한 게임 ‘무신조자룡’도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송년 모임도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의 ‘훠궈’(중국식 샤부샤부) 식당에서 할 예정이다.

2030세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중국 제품과 문화의 소비가 늘고 있다. 이른바 중류(中流·Chinese Wave)다. 중국 내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제한하는 한한령(限韓令)이 진행 중인 것과 대조적이다. 샤오미의 공기청정기를 거실에 놓고,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해외직구 사이트인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쇼핑을 하고, 중국 드라마(중드)를 찾아 보며, 훠궈와 마라탕·양꼬치를 즐겨먹는 한국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전문 매체 플래텀 조상래 대표는 “글로벌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을 만큼 혁신적이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인 중국 제품을 해외직구로 살 수 있는 시대”라며 “삼성·LG가 장악한 휴대전화를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중국’이라는 브랜드는 더 이상 ‘싸구려’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과 함께 G2로 자리를 굳힌 중국과의 교류가 늘고 중국에서 유학한 세대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 4월 1일 기준 한국인 유학생(어학연수 포함)이 많은 국가 1위는 중국(29.8%)으로, 미국(28.5%)을 처음으로 제쳤다.

국내 중류의 확산에는 샤오미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국내에 샤오미 열풍을 일으키며 중국산 정보기술(IT) 기기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 휴대용 충전 배터리와 손목 밴드인 미(Mi)밴드를 시작으로 최근엔 휴대전화 이외에 거의 모든 샤오미 제품이 국내에서 팔리고 있다. 샤오미 국내 유통사인 코마트레이드는 내년에 ‘샤오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낼 예정이다.

이 회사의 정진호 부장은 “샤오미 나인봇 같은 제품은 매달 1000개씩 팔릴 정도로 샤오미 제품에 대한 인기가 높아 가습기·선풍기·전기밥솥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동차계의 샤오미’를 노리는 중국 자동차 업체도 많다. 중국 5대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인 베이치인샹(北汽銀翔)은 내년 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S6를 출시할 예정이다. 가격은 2000만원 안팎의 수준으로, 비슷한 국내 SUV 차량보다 30% 이상 저렴하다. 지난해 국내에 대거 진출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미니밴·트럭·버스 등 상용차는 많이 출시했지만 승용차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산 승용차를 한국 시장에 출시한다는 건 중국 이 기술이나 가격 면에서 자신감을 가졌다는 증거”라며 “한국 시장 자체는 작지만 한국은 북미·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중국 업체들이 한국 진출을 위해 오래 준비했다”고 말했다.

3년여 전부터 한국 진출을 검토하던 전기차 업체 BYD는 지난 10월 제주도에 법인 등기를 마쳤다. 국내 딜러 3개사를 통해 마을버스 규모의 전기 버스부터 출시할 예정이다.

중류의 기세는 대중문화에서 더 뜨겁다. CJ E&M이 운영하는 케이블채널 중화TV는 최근 5년 새 시청률이 435% 상승했다. 지난해 국내 방영으로 큰 인기를 끈 중드 ‘랑야방:권력의 기록’의 경우 0.5%만 넘어도 대박으로 평가 받는 케이블TV인데도 서울 지역 최고 시청률이 1.8%(전국 0.8%)를 기록했다.

인기 중드 주인공들은 중국 내 한류스타처럼 국내에 팬층이 두텁다. 최근에는 중국 소설 기반의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가 국내 지상파 방송에 파고들기도 했다.

문화 콘텐트 산업에서 중국의 경쟁력은 중국 자본의 힘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삼국지·서유기 등 역사적으로 좋은 지적재산권(IP)을 가진 중국이 자본과 기술의 힘을 더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데 눈을 떴다.

중국 엔터테인먼트기업 화이브라더스코리아의 정원선 본부장은 “문화나 음식·라이프스타일 같은 소프트파워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지가 강한 데다 자본력이 더해지면서 중국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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