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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들 잇단 「성표현」작품발표|현실문제 비판·풍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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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 문학사상 최초로 시집에 음란·저속도서라는 판정이 내려져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문공부는 최근 민음사가 발간한 김영승시집 『반성』을 『남녀의 성을 지나치게 저속하게 표현, 독자에게 혐오감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음란·저속도서로 규정하고 해당 출판사에 『이같은 저속 간행물을 재차 발행할 경우 출판사등록취소는 물론 미성년자보호법에 의거, 고발조치하겠다』고 엄중 경고했다.
지금까지 문학작품에 대한 외설시비는 69년 염재만씨의 『반노』등 소설 10여건이 있었으나 시집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문제가된 시집 『반성』은 최근 활발한 활동을 펴고있는 이성복·황지우·최승호·박남철·이윤택·장정일등 젊은 시인들의 시세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에서 「80년대적 표현자유제약」논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즉 이들 젊은 시인들은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70년대까지만 해도 낭만적 모더니즘의 환기장치로 쓰이던 「도시」를 현대문명 (또는 현실)의 추악함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으로 파악하고 ▲이같은 「도시적 상상력」을 통해 소외·억압·분배·타락문제등 현대적 상황을 폭로·풍자하는 문명비판시를 형성, 80년대 후반의 독특한 감성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폭로의 방법론을 기존의 모든 시적 형식이나 도덕률을 파괴한다는데 둔다는 점등에서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문명과 현실 전체를 치열한 반성의 대상으로 삼고있는 시집 『반성』의 경우 「생각해보았는가/아무도 몰래 묵묵히/<××>(주=×는 여성의 성기를 직접표현)를 발음해보며/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불타나 예수의 모습을」(『반성563』)처럼 성을 통해 현실의 허위의식을 폭로하거나 「돈많은 유한부인인 너의 개가되어/섹스 노리개가되어 …/너의 기생충이 되고싶다」(『반성546』)등 우리사회의 성적타락을 고발하는 시들이 다수 수록돼있다.
황지우는 「어느날 나는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누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친구 누나의 벌어진 가랭이를 보자 나는 ××(주=×는 남성 성기를 직접표현)가 꼴렸다…」(『숙자는 남편이 야속해』)처럼 화장실의 낙서와 TV연속극을 동일시, 지배문화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가 하면 박남철은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 이 좆만한 놈들이」(『독자놈들 길들이기』)처럼 이른바 시적인 것을 허락하지않는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절망을 신랄하게 풍자하기도 한다.
이밖에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이성복), 『춤꾼이야기』(이윤택), 『진흙소를 타고』(최승호), 『햄버거에 대한 명상』(장정일)등의 시집에도 성을 절망적으로 다룬 부분이 자주 튀어나온다.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는 『「반성」은 소돔성처럼 타락한 현대사회에 대한 냉철한 고발』이라고 전제, 『「반성」을 외설로 보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의식에 가식이 있는지 반성해봐야한다』고 말했으며 시인 최승호씨는 『타락한 현실을 절망적으로 폭로한것은 용기』라며 이번 사건은 문학의 표현자유억압이라고 단정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은 『현실을 폭로하는 방법도 방법 나름』이라며 반도덕시하는 부정적 시각과 『현실폭로방법의 다양화를 통한 문학총체성에의 기여』를 주장하는 긍정적 시각이 공존하는 문단자체내에서도 적지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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