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소설 『내일 또 내일』 유재주<소설가>|출세욕이 빚어내는 파국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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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용성의 장편 『내일 또 내일』은 인간성 상실이 빚어내는 파국을 아프게 고발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야망과 배신과 사람과 희생을 그린 삶의 투영도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사람들의 목적이 되었고, 개개인을 판단하는 가치 기준이 되었다. 그 사회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지게 마련이다.
『가난한 인간은 가난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작가의 지적처럼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배고픔에 대한 공포, 범죄에의 충동적인 유혹 등등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을 위협 속에 놓여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은 늘 부를 동경하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내일 또 내일』 의 주인공 이규화 역시 가난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어내고자 애쓰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에 짓눌려왔다. 그러기에 그의 꿈은 부를 획득하는 일이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버리고 무엇이든지 빼앗는 인간으로 변모해간다.
여기에 희생되는 것이 이규화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던져주는 여인 오미연과 순수하기는 하나 소극적인 성격의 죽마고우 강진우다. 또한 이규화의 야망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의 출세를 돕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방황하고 갈등하는 정가희와 뒤늦게 사랑에 눈을 뜬 젊은 미망인 한경애 역시 비극적 종말을 맺게된다.
이들의 이러한 비극적 삶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부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죄악에 대한 가치 판단의 혼돈과 인간성 상실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기성세대는 궁핍과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출세욕만 가르쳐 주었을뿐 거기에 수반되는 도덕과 양심을 물려주지는 않았다. 이것이 이규화의 비극이다. 이규화의 삶은 곧 우리들의 삶이며, 이규화의 삵의 방식은 곧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우리는 기이하게도 절망과 좌절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따스하고 밝은 한줄기 빛을 보게 된다. 그 까닭은 아마도 한 야심가에게 철저히 짓밟히고, 빼앗기고, 이용당하는 과정에서도 그를 버리지 않고 죽음으로써 (정가희), 스스로 자신을 파국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강진우), 그리고 절대에 가까운 모성애적 사랑을 실현해 보임으로써 (오미연) 이규화의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시켜주려는 희생적인 무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저는 네 사람을 잡아먹고 하나의 인간이 된셈입니다.』
후일 이규화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것은 젊은 날의 부패했던 한 인간의 영혼의 부활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내일의 모습이다.
도심지 건물 옥상 위로 스러져가는 석양빛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 김용성의 얼굴에서, 문득 내일의 따스한 삶을 예견하는 예언자적 경건함을 본것은 순간적인 나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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