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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주가조작 엄단’이 최순실 덕분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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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고란 경제부 기자

고란
경제부 기자

‘○○○ 게이트’의 연관 검색어는 ‘주가 조작’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알려진 뒤 최씨 일가의 상장사 투자 내용을 살폈다. 최순득(최씨의 언니 ) 씨의 남편 장석칠 씨가 2007~2008년 코스닥 기업에 5억 원 가량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2010년 상장폐지됐다.

최씨가 스마트교육 관련 업체 아이카이스트에 투자했다는 설도 돌았다.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의 동생이 이 회사 부사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비상장사라 주주 명부 확인이 어려웠다. 어쨌든 이 회사의 대표가 사기 혐의로 지난 9월 구속됐다. 이 회사가 수백억 원을 들여 증자에 참여했던 코스닥 상장사도 9월 시장에서 퇴출됐다.

투자 내용만 보면 최씨 일가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관련한 태스크포스(TF) 취재팀에 있는 동료 기자에게 아는 게 좀 있는지를 물었다. 그가 “이 집안은 주식 안 한다. 부동산만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의문에 대한 답은 한 애널리스트 출신 전업 투자자(일명 ‘애미’)가 줬다. 관점을 달리하면 된다. 곧, 최씨 일가는 주가 조작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접근이다.

논리 전개는 이렇다. 박근혜 정부 초기, 대통령이 나서 강조한 첫 번째 경제 정책이 ‘주가조작 등 불공정 거래근절 종합대책’이다. 공식 석상에서 “주가조작 세력에 대한 엄단”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2013년 검찰과 금융 감독기관, 국세청 등으로 구성된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출범한다.

통상 이런 수준의 정책은 대통령이 직접 신경 쓸 만한 사안이 아니다. 당시엔 의문이었는데 최씨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이해 가더란다. “최씨 일가가 주가조작 세력에게 당했고, 대통령에게 ‘참 나쁜’ 사람들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합수단까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합수단은 그해 10월,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이득을 취한 기업공시 담당자와 애널리스트들에게 칼을 들이댔다. 관행에 철퇴를 가하면서 탈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던 펀드 매니저들이 몸조심하기 시작했다.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이제는 매니저들도 수익률 조금 높이겠다고 무리해서 매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정치 테마주가 움틀 대기 시작했다. 검찰과 금융당국, 한국거래소 등은 최근 정치 테마주 집중 관리를 위해 ‘시장안정화 협의TF’를 구성했다. 누구 덕분(?)에 출발했건, 관계 당국의 강력한 의지로 앞으론 주가조작 세력의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았으면 한다.

고란 경제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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