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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주가 박스권 탈출은 힘겨울 듯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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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18면

내년에 주가가 박스권을 뚫을 수 있을까?


매년 이맘때면 받는 질문이다. 박스권은 위·아래 두 방향으로 뚫릴 수 있는데, 질문의 대부분은 위쪽에 맞춰져 있다. 내년에도 주가가 박스권을 벗어나기 힘들다. 주식시장이 오랜 시간 지지부진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경제와 기업 실적이 좋지 않아 위로 올라갈 힘이 없는 반면, 저금리와 고유동성으로 하락이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주가가 박스권을 벗어나려면 상승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을 정도로 쌓여야 하는데 아직 그럴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국내 경제가 침체 상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3분기 성장률이 0.6%를 기록해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데, 건설 부문을 제외할 경우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개선 가능성도 높지 않다. 2011년 이후 우리나라의 연평균 실질임금상승률이 0.3%에 그치고 있다. 소득이 정체되면서 소비를 끌고 갈 동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새로운 투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바닥 다지는 미국·중국과도 다른 모습]
더 큰 문제는 국내 경기 둔화가 선진국과 동떨어진 형태라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올 1분기를 바닥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3분기 성장률이 3%대를 기록할 정도로 높아졌다. 중국도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상승하고,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등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가 선진국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건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일러스트 강일구

기업 실적에 대한 기대도 약해졌다. 올 상반기에 상장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기록했다. 그만큼 주가 상승 기대가 높았는데, 10월을 지나면서 기대가 꺾이고 있다. 주변 여건을 고려할 때 당분간 이익이 늘어나기 힘들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2003년 10조원 정도였던 분기당 영업이익이 2010년이 되면 25조원으로 늘어난다. 세 가지 힘이 작용했는데, 경제상황이 괜찮았고, 중국 특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가가치 총액이 4배 가까이 늘었고, 부가가치 중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몫은 15%에서 60%로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2011년을 마지막으로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성장이 둔화되면서 기업의 부가가치가 늘어날 가능성이 약해졌다. 경제의 안정성을 감안할 때 60%에 달하는 분배율이 더 높아지기도 힘들다. 이제 중국 특수는 공급 과잉이라는 악영향으로 변했고, 성장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경제 지표와 기업 실적을 감안할 때 내년에 박스권을 뚫기 힘들다.


위·아래 중 양자 택일을 한다면 박스권을 위로 뚫기 보다 아래로 뚫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락을 막는 역할을 하는 저금리-고유동성 정책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부터 최근까지 선진국은 쓸 수 있는 모든 정책을 다 썼다. 기준금리를 예로 들면 금융위기 직전 4.25%였던 금리를 1년만에 0.25%로 내릴 정도였다. 1930년 대공황 때 4%대 초반이었던 기준금리가 8년이 지난 후에야 1.0%가 된 것과 비교된다. 재정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에 미국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이 되자 ‘미국이 세계 2등 국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금융위기 직후 해당 수치가 10%를 기록하기도 했다. 

[과거 주가 1000 넘어서는데 16년 걸려]
저금리 정책이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이제 목표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성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명백해진 이상, 성장 목표를 낮출 수 밖에 없어진 것이다. 이 경우 저금리를 무리하게 유지하고, 유동성 공급을 늘릴 필요가 없어지는데, 내년부터 정책 정상화 작업이 진행되지 싶다. 금융완화 정책 약화는 주식시장의 바닥을 약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지난 몇 년간 강한 정책에 익숙해진 상태여서 정책이 변경되는 초기에 특히 심하게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이달 미국 금리 인상은 정책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다른 나라도 더 이상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몇 달간 국내외 금리가 바닥대비 70% 넘게 상승했다. 올해 7월을 기점으로 금리의 장기 하락 추세가 끝났는데 정책 변경 가능성이 금리 상승을 통해 시장에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종합주가지수가 발표되고 41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시장은 마디 지수를 지날 때마다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지수 100을 넘는데 7년이 걸렸고, 1000에서는 16년이 걸렸으며, 2000에서도 이미 9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동안 마디 지수를 넘기 전에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을 거쳤다. 1980년대 중반에 주가수익비율(PER)이 3배를 기록한 것도 종합주가지수 100을 돌파하기 위한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이었다. 주가가 7년간 박스권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익이 정체됐던 건 아니다. 조금씩 늘어나긴 했는데, 쌓인 수준이 주가를 움직일 정도가 되지 못했을 뿐이다. 답답할 뿐 주가가 몇 년 동안 옆으로 늘어지고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내년에도 비슷한 모습일 것 같다.


이종우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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