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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보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본능이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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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로저 스크러튼 지음
박수철 옮김, 더퀘스트
320쪽, 1만6000원

아주 오래된 쓸모있는 것을 지키고
더 좋은 것을 찾아내는 게 보수 본능
진보를 끊임없이 흡수하며 진화도
보수적 관점 없이 번창하긴 힘들어

어느 사회나 보수와 진보라는 양 날개가 필요하다. 둘다 건강해야 하며 둘 사이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사회가 융성할 수 있다.

우리나라 보수가 흔들리고 있다. 보수 위기의 중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보수·독재·고속성장을 떠올리게 한다. 보수와 독재와 발전의 3자 관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시점이다.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이하 『보수』)와 『전문가의 독재』(이하 『독재』)가 성찰에 필요한 재료를 제공한다.

『보수』의 저자 로저 스크러튼은 영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다. 기사 작위도 받았다. 행동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좌파가 장악한 영국 학계의 푸대접을 받았다.

원제가 ‘어떻게 보수주의자가 될 것인가(How to be a Conservative)’인 『보수』에서 스크러튼은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민족주의·사회주의·자본주의·자유주의·다문화주의·환경주의를 검토한다. 특히 그는 좌파 어젠다인 다문화주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영국 정치가·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우리의 인내가 우리의 무력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가 그린 버크의 초상화. [사진 더퀘스트]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영국 정치가·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우리의 인내가 우리의 무력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가 그린 버크의 초상화. [사진 더퀘스트]

스크러튼은 인류가 보수적인 관점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번창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수가 사라질 일은 없다. 스크러튼에 따르면 보수가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해하는 보수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쓸모 있거나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들을 지키려는 본능이다.

더 좋은 것을 찾는 것도 본능이다. 보수는 끊임 없이 진보를 흡수한다. 하지만 어제의 진보가 무조건 내일의 보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심사하는 것은 사회다.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전통에 따라 스크러튼은 사회를 우리 조상과 우리와 우리 자손이 이루는 파트너십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좋은 것들을 자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스크러튼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것은 허물기는 쉽지만 쌓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의 독재
윌리엄 이스털리 지음
김홍식 옮김, 열린책들
592쪽, 2만5000원

국가주도의 경제발전 방식도 물려줘야 할까. 『독재』의 저자 윌리엄 이스털리 뉴욕대 경제학 교수에 따르면 경제발전의 원천은 국가도 독재도 아니다. 발전은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때 일어난다. 권리와 자유가 보장돼야 사람들은 아이디어와 혁신을 교환한다. 그게 성공의 비결이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을 없애려면 전 세계에 경제적·정치적·개인적 자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자유를 확산해야 한다. 이스털리 교수는 독재자·선진국·국제기구·전문가들이 결탁해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스스로와 후손들을 위해 우리는 지금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이스털리 교수에 따르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올바른 국가적 행동은 무엇인가”는 이제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이스털리가 제안하는 질문은 “어떠한 정치적·경제적 권리의 체계를 갖추어 놓아야 다수의 개인들이 그들 자신의 발전을 위한 올바른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이다.

정주영의 성공, 한국의 기적 일군 건 경제적 자유

발전론은 한국을 ‘권위주의 발전’의 사례로 종종 인용한다. 이스털리 교수는 한국을 그러한 주장을 깨는데 활용한다. 그는 특히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1915~2001)에 주목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정주영은 자유의 신장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정주영은 엄격한 신분제가 아직 기억에 생생한 때에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낭독된 독립선언서는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라고 선언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7500명의 시위참가자를 살해하고 4만6000명을 투옥했다. 1945년 해방으로 한국인들은 더 많은 자유를 얻었다. 정주영은 1960년대에 통치자들이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기 시작한 것을 보고 현대를 창업했다. 한국의 기적을 권위주의 성공사례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 한국은 독재가 약화되고 붕괴하면서 급팽창한 번영의 기적을 달성했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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