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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법안 피한 경영승계 포석?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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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매일유업 등 인적분할 발표 … “경영 효율성·투명성 강화” 주장

지배 구조 강화인가, 승계를 위한 사전 작업인가. 최근 식품 기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속속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게 유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 말도 나온다.

식품회사의 지주회사 전환 러시, 왜?

최근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은 오리온과 매일유업이다. 두 회사는 지난 11월 22일 현재 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리온은 기업분할을 통해 ㈜오리온(가칭)을 식품 제조와 관련 제품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사업회사로 신설한다.

존속법인은 자회사 관리와 신사업 투자를 목적하는 지주회사 ㈜오리온홀딩스(가칭)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매일유업도 비슷한 방식으로 전환한다. 내년 5월 1일을 목표로 지주회사 매일유업홀딩스로 전환하고, 신설하는 사업 회사를 매일유업으로 결정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오리온홀딩스는 신규 식음료 비즈니스로 시장 확대를 위한 투자 업무에 집중한다. 오리온은 15개 해외 제과사를 자회사로 편입해 아시아 제과사업 확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매일유업 또한 매일유업 홀딩스가 제로투세븐, 엠즈씨드 등 매일유업을 제외한 나머지 자회사를 거느리게 된다. 기존 매일유업은 유제품 개발·생산·판매사업에만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샘표식품이 지주회사 ‘샘표’와 사업회사 ‘샘표식품’으로 회사를 분할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10월에는 크라운제과가 식품제조 및 판매를 담당하는 ‘크라운제과’를 신설하고 존속하는 회사를 지주회사인 ‘크라운해태홀딩스’로 전환하는 방안을 결의하기도 했다.

이들 기업들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지주회사 전환 배경은 경영 효율성과 책임경영이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지주사 체제 전환을 통해 경영 효율성과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장기 성장을 위한 지배구조 확립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오리온 재경부문장인 박성규 전무는 “오리온이 창립 60년 만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급변하는 국내외 식품시장에서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총수 일가의 전횡 우려

지주회사는 정말로 경영 효율성과 책임경영에 도움이 될까. 지주회사는 쉽게 설명하면 자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면서 자회사의 경영을 지휘·감독하는 형태다.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만들고 대주주의 기업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림자도 있다. 대주주의 독점적 피라미드형 지배인 셈이기 때문이다. 경영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반대로 지주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총수 일가가 전횡을 일삼을 수도 있다.

지주회사법이 도입된 것은 1999년.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대기업의 문어발식 출자구조 해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 하지만 순환출자 구조 개선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면서 대기업들은 지주회사 설립을 미루거나 소극적으로 검토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지주회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배경에는 단순히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창업주나 오너가 자식 세대에게 회사를 넘겨주는 방법으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업은 자식 세대의 지분율이 미미한 수준이다. 회사는 계속 덩치가 커지는데 지분을 그대로 넘겨주면 세금 폭탄을 맞는다. 지주회사 체제가 승계를 위한 묘수가 된다.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이재용 부회장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0.6%에 불과하다. 자사주 지분율은 12.78%(보통주 기준)지만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하면 자사주는 의결권이 다시 생긴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리홈쿠첸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주회사 부방과 사업회사 쿠첸으로 인적분할했다. 이 과정에서 2세 이대희 대표는 부방 지분율을 18.3%에서 30.4%로 끌어올리면서 기업 지배권을 강화했다.

이에 비해 오리온과 매일유업은 현재 오너가 60대 초반으로 젊은 축에 속한다. 이 때문에 두 기업은 기업 승계를 위한 지주회사 전환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아직까지 오너가 사업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는 만큼 승계를 위해서 지주회사로 전환했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훗날 승계를 위한 작업을 미리 시작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은 상대적으로 승계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지만, 언젠가는 복잡한 승계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대비한 측면이 있다”면서 “더군다나 앞으로 지주회사 전환이 쉽지 않은 여건이 마련될 예정이어서 더욱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 지주회사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국회에 상정돼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가리킨다. 법안은 대주주가 지주회사를 설립하면서 자사주를 활용해 회사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걸 막자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 김기준·박영선·김기식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7월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회사가 분할할 경우 분할하는 회사가 원래 보유하는 자사 주에 대해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도 발의한 바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여당의 입지가 약화되는 등 불안정한 정치 상황도 기업들로선 악재다. 반기업 정서 기류마저 나오는데다 여당의 힘이 빠지니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에 힘이 실릴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다. 유진투자증권 김준섭 연구원은 “개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기업 입장에서 리스크를 회피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잇따르는 배경을 분석했다. 이런 배경에서 기업들은 승계를 위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로 전환하려면 지주사는 상장 회사의 20%, 비상장 자회사의 지분 40%를 보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너들은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내주고 지주회사 주식을 받아오는 현물출자나 3자배정 유상증자 등으로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

중견기업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세제 혜택 받아

대기업에 비해 덩치가 작은 기업들은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중견기업들은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대주주가 자회사 지분을 매입할 경우 취득세가 면제된다. 또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주식을 교환할 때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는 주식을 매각할 때까지 내지 않아도 된다. 지주회사 설립 후 주가 상승 효과도 볼 수 있다. 지주회사 설립 후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면서 시장에서 값을 후하게 쳐주기 때문이다. 신성장동력과 주력 사업 부문에 집중하면서 사업회사의 효율성도 높아지는 것도 주가 상승의 이유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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