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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로 경로당·요양원 어르신 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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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성남 ‘소리사랑회’ 단장 김복심

김복심 단장은 “목소리가 나오는 그날까지 사람들에게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김복심 단장은 “목소리가 나오는 그날까지 사람들에게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소리사랑회 연습실에 들어서자 구성진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복심(62) 소리사랑회 단장. 파란 치마, 빨간 저고리를 입고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그는 장구로 장단을 맞춰가며 ‘아리랑’을 열창하고 있었다. 연습시간보다 일찍 이곳을 찾은 회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 단장의 노래에 목소리를 보탰다. 독창으로 시작한 민요는 어느새 합창이 됐다.

“국악 접한 뒤 지독한 우울증 극복”
소외층 찾아 해마다 30차례 공연

김 단장은 2004년 소리사랑회를 창단했다. 지역 주민센터에서 경기민요 강사로 활동하는 김 단장과 그의 제자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처음엔 국악을 배워본 적도 없는 50~60대 주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원 수도 100명 가까이 되고, 김제 지평성 국악대회, 강릉 솔향 아리랑제 등에서 수상할 정도로 실력도 갖췄다.

1년에 30회 넘는 공연 대부분은 경로당·복지관·요양원에서 60~80대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다. 김 단장은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며 “기력이 없어 보이던 어르신도 공연이 시작되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 민요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단장이 국악으로 봉사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신도 민요를 배우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아이 셋을 낳은 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의 머릿속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수면제를 먹고 3일 동안 잠에서 못 깬 적도 있고, 응급실에 실려 가 위 세척도 여러 번 했다. 옥상에 빨래를 널러 갈 때마다 세 자녀는 엄마가 혹시나 자살할까봐 그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김 단장의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된 이웃 한 명이 ‘국악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그는 “처음에는 흘려들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동네 장기자랑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 정도로 노래 부르기를 즐겼던 그다.

그의 첫 민요 수업은 그의 모든 인생을 바꿔놨다. 배에 힘을 주고 단전 밑에서부터 소리를 끌어내 입으로 뱉어내자 가슴 속에 있던 응어리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개운했다. 이후 국악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우울증 약 없이 며칠도 제대로 버티지 못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웃는 일이 잦아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국악을 시작하고 3~4년 후부터 한 번도 안 했다.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던 병을 국악으로 치유한 셈이다. 김 단장은 “특히 경기민요는 경쾌하고 흥겨운 리듬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다. 모두 신이 나기 때문에 우울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주민센터 세 곳에서 강의를 하고, 주 3회는 소리사랑회 회원들과 공연 연습을 한다. 7년 전부터는 성남시의 후원을 받아 연 1회 정기공연도 열고 있다. 지난달 13일 공연에서는 딸·손자와 함께 3대가 한 무대에 섰다. 김 단장은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재능기부를 이어갈 생각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활력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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