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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교에서는…<32>|「피아노 공포증」에 시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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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생님, 피아노가 무서워요.』
여대생 Q양(20· E대2·피아노 전공)이 하소연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하순, 서울A정신신경과의원. 『혼자서는 좋은데 교수님 앞에만 앉으면 엉망으로 돼버려요. 공포감이 몰려오고 숨이 가빠져요. 땀이 나고 제정신이 아닌 채 뭔지도 모르고 쳐버려요.』
딸을 데리고온 50대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럴 수 없이 착실하고 열심이던 딸애인데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어요. 몸에 이상이 생겼나해서 내과에서 정밀검사를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의사는 Q양과 그 어머니 얘기를 한참 들어야했다.
Q양은 국교 3년 때부터 피아노앞에 강제로 앉혀졌고, 고졸의 어머니는 「세계적 피아니스트를 내 딸로 갖고싶다」며 Q양을 채찍질했다.
세딸 중 차녀. 어머니는 처음 큰 딸에 기대를 걸었다가 말을 안들어 중학교때 포기하고 Q양에게 전부를 걸었다. 돈을 아끼지 않고 이름있는 선생님도 모셨다. 사업가 아버지도 뜻을 같이 했다.
Q양은 부모의 뜻에 곧잘 따랐고, 예고에 진학해 인정도 받았다. 대학입학 때까지도 그런 것 같았다.
의사가 진단한 Q양의 병명은 「심리적 압박감에 의한 임장(임장)공포증」. 테스트 받는 장소에만 가면 노이로제가 나타나는 증상이다.
12년을 버텨온 「피아노 천재」가 대학 2학년이 되면서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의 과증한 기대가 주는 압박감과 스스로 느끼는 재능의 한계, 자아의식이 성숙해가면서 싹트기 시작한 피아노인생에의 회의가 원인이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지금 Q양은 6개월째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집중적인 정신요법으로 이제 공포증은 극복해 나가고 있지만, 피아노와 마주하면 정감이 샘솟고, 그 자체가 즐거워야 할 음악이 이제 Q양에게는 큰 짐이 돼버렸습니다』
Q양의 부모는 이제 꿈을 버렸고, 졸업이나 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됐다. 강요된 꿈은 무산되고, Q양으로부터 발랄해야할 생동감만 앗아갔다.
××
예고진학에 실패, 지난 3월 인문고에 진학한 S양(16·서울 B여고1)은 더 지독한 부모의 성화에 시달렸고, 그래서 오히려 일찍이 음악을 포기했다.
『챌로는 이제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요. 중2 때였어요. 느닷없이 엄마에게 끌려 첼로에 손을 댔어요.』
S양은 그때가 악몽과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때부터 제게는 자유시간이 없었어요. 엄마가 승용차를 교문 앞에 대기, 수업이 끝나면 레슨선생님댁에 실어갔어요. 집에 오면 학과공부와 첼로연습을 해야했죠.』
한 번 만이라도 신나게 놀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꿈을 꿀 정도였다고 했다. 반면에 어머니의 성화는 갈수록 더 숨막히게 S양을 죄왔다.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느냐. 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네게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음악회에 갔다가 첼로에 매료된 어머니가 S양을 기어이 챌리스트로 길러내겠다고 마음먹고 다그쳐 들어갔다.
그런데 S양에게 적신호가 왔다. 3학년 2학기가 되자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이 자주 와 학교에서는 양호실신세를 지고, 조퇴가 빈번해졌다. 어머니는 음악선생님을 찾아 어떻게든 예고와 음대에 넣고 말겠다며 발을 굴렀다. 그러나 무위로 돌아갔다.
『사실 S양은 첼로나 음악에 뛰어난 재질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첼로선생의 말을 듣고 첼로의 천재로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학과공부만도 빅찬 아이였습니다. B중 음악담당 김교사(42)의 말이다.
결국 여고를 낙방한 뒤에야 어머니는 『남들이 다 하길래 나도 할 수 있다고 무모하게 덤빈게 잘못이었습니다.』
Q양이나 S양의 좌절은 예능계 특수학교에서 흔히 나타난다. Y중의 경우 1년이면 20여명이 자퇴하고, S예고에서도 재수생을 합치면 10여명씩 포기한다.
김교사는 『예능에 강요는 특히 금물입니다. 정신질환이 오게되죠. 가끔은 정신적 파탄이나 비행으로 쫓기게 됩니다』며 『부모는 음악적 소질을 시험할 기회를 주고, 뒷바라지 하는데 그쳐야합니다』고 했다. <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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