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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승 파문 꼬리무는 의문] '몰카' 미스터리…說만 난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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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향응을 받는 장면이 몰래 카메라로 촬영돼 TV 전파를 탄 초유의 사건은 여러가지 미스터리를 낳고 있다. 누가, 무슨 이유로 찍었으며, 또 왜 언론사에 흘렸는지, 노림수는 뭔지 등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누가 찍었나=몰카 촬영 의심을 받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오원배 민주당 충북도 부지부장의 소개로 당시 술자리에 합석했던 李모씨다. 梁실장이 향응을 받은 문제의 나이트클럽과 호텔의 소유주인 李씨는 조세포탈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때문에 梁실장에게 자신의 구명 운동을 한 뒤 여의치 않을 경우 梁실장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려는 목적으로 테이프를 확보했을 것이란 주장이 청주 현지와 정치권 주변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李모씨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吳씨도 "李씨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지역에선 사업상 李씨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특정 이해관계 세력이 李씨와 吳씨를 매장시키기 위해 '몰카'를 동원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비디오 테이프를 처음 입수한 SBS는 1일 저녁, 익명의 제보자가 李씨의 수사 상황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李씨에 대한 검경의)수사가 흐지부지될까(걱정이다)…그 사람들(李씨)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많다"는 전화 녹음을 보도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사업적 이해관계보다 '정치적 음모설'에 무게를 두는 분석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충북지역의 여권 정치권 내에서 벌어지는 주도권 싸움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양길승 실장 등 여권 실세들과 교분을 과시하며 부상하고 있는 吳씨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정치적 라이벌 세력이 기획했을 가능성이다.

이런 가설은 지역 라이벌 세력들의 배후에 중앙의 청와대와 민주당 등 여권 권력 실세들이 연결돼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이 가설이 입증될 경우 파괴력은 상상하기 어렵다.

◆치밀하고 조직적인 '몰카'=몰래 카메라 촬영은 梁실장의 톨게이트 도착→호텔 출발→나이트 클럽→포장마차 술자리의 동선(動線) 전반에 걸쳐 이뤄졌다. 손가방에 숨긴 '몰카'를 포함해 복수의 카메라가 동원됐고, 원거리에서의 줌인 장면 등 전문가 수준의 솜씨를 보였다. 특히 나이트 클럽의 화면은 건너편 모텔에서 촬영된 게 확실시된다.

SBS에 따르면 梁실장에게 초점을 맞춘 추적은 13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최소한 차량 2대와 3명의 인원이 동원됐다. 8㎜ 홈비디오를 방송용으로 컨버팅한 VHS 테이프와 6㎜ 테이프 2개가 방송사에 택배로 전달됐다. 테이프는 10여분 분량이다.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이만한 조직력과 정보수집력, 기술을 가진 집단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청주 현지에선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李씨를 면밀히 추적.내사해 온 수사기관이 李씨의 구명 로비 장면을 채증하는 과정에서 테이프가 확보된 게 아니냐는 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젊은 여성이 방송 제보=梁실장에 대한 향응 제보는 여러 언론사에 접수됐다. 7월 초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사와 SBS에 전해졌고 바로 기사화되지 않자 지역신문에 전달돼 보도됐다.

정작 이를 크게 기사화한 것은 7월 31일자 한국일보였고 이날 저녁 SBS도 뒤따라 보도했다. 애초부터 매체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추정돼 '몰카' 제작세력이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식견을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일보 측은 "제보가 아니라 자체 취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사를 쓴 한국일보 기자는 "평소 친분이 있는 경제계 인사에게서 실마리를 얻어 연고가 있는 청주 쪽에 확인해 기사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SBS엔 젊은 여자가 전화로 제보했다.

제보자는 공중전화를 사용했으며 "내 신원을 파악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제보자는 기자의 만남 요청을 거부했다. SBS 측에 테이프를 전달한 택배업체 직원은 테이프 제공자가 안경을 쓴 남자였다고 설명했다.

◆양길승 왜 노렸나=몰카가 처음부터 梁실장을 희생양으로 노렸을 경우 그 동기에 대해서도 여러 관측이 나온다. 부속실장은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며 대통령의 심기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요직이다.

여권 내 각 세력이 자기측 인사를 심으려고 애쓰는 노른자위 중의 노른자위 자리다. 뒤늦게 지난 2월 청와대 인선 당시 부속실장 자리를 놓고 실세들 간의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청와대 측의 입장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청와대 측은 당초 검찰에 맡겨 신속히 수사를 하려는 구상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청와대 차원의 자체 조사에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사안이 워낙 복잡한 데다 몇가지 시나리오의 경우는 사실로 드러나면 정국에 미칠 파장이 엄청나다는 점을 의식한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최훈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지난 6월 말 청주에서 조세포탈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자로부터 향응을 제공 받은 곳으로 알려진 R호텔(左)과 K나이트 클럽.[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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