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탄핵 외길···질서 있는 탄핵으로 국정 정상화 앞당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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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 탄핵 절차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르면 다음 주중 탄핵소추안의 국회 발의와 표결 절차를 밟겠다는 게 야권 일정이다. 새누리당에선 김무성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탄핵 발의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탄핵 찬성 의원이 늘어나고 있다.

‘임기 중단’ 90% 넘는데 박 대통령 버티기
리더십 부재에 갈등 커지면 위기 불가피
야당은 국정혼란 최소화하는 데 노력하길

 사실 대통령 퇴진 여부가 걸린 탄핵은 가급적 피해야 할 최후 수단이고, 국가적 불행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에 의해 범죄 피의자가 된 헌정 사상 유례없는 기막힌 상황에서 검찰 수사마저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는 대국민사과에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2선 후퇴, 하야, 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뒤 국정 운영엔 적극적이다. 나아가 청와대는 “차라리 헌법·법률 절차에 따라 논란을 매듭지어 달라”고 사실상 탄핵 심판을 요청했다. 탄핵은 불가피하게 된 셈이다.

 박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불법 설립 및 강제 모금, 기밀문서 유출 등을 공모한 혐의로 피의자가 됐다. 청와대는 최순실 민원 창구란 말까지 듣고 있다. 전국의 성난 민심이 매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데, 피의자 신분인 대통령은 1년이 훨씬 더 남은 임기를 채우는 걸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본지 여론조사에선 박 대통령 거취에 대해 90%를 넘는 사람들이 ‘하야든 탄핵이든 대통령 임기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2.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 촛불이 늘어만 가는 이유는 이런 민심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탄핵 수순이 외길이라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막상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탄핵소추안은 최장 180일 동안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을 거쳐야 한다. 그 기간 대통령 직무는 정지된다. 헌재의 최종 결정이 늦어질수록 식물 정부가 무정부 상태로 전락할 가능성은 높아지고, 사회 전체엔 반목과 충돌이 격화될 게 분명하다. 탄핵안의 국회 통과를 놓고 여·야당 각 정파 간의 파열음이 격해질 것도 뻔한 일이다. 가뜩이나 안보와 경제의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탄핵보다 거국중립내각과 질서 있는 퇴진에 대한 요구가 컸던 건 이런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합리적 해결책을 걷어찬 이상 이제 다른 선택지는 사라졌다.

 그래서 정치권은 국정 혼란의 최소화 방안을 찾는 데 노력해야 한다. 특히 야권은 탄핵 정국이 시작되는 순간 정국 관리의 책임이 거대 야당 몫이란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대통령의 총리 추천을 거부해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 상황을 만든 게 지금의 야당이다. 심지어 야당 일각에선 국정 혼란이 길어진다 해도 손해 볼 것 없다는 목소리까지 있다고 한다. 곧 이어질 대선에서 불리할 게 없다는 얘기다. 국가적 비상사태를 즐긴다는 비판이 나오는 순간 성난 민심의 화살을 피하긴 어렵다. 정치권 모두가 ‘질서 있는 탄핵’을 위해 협조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