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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촛불 든 10대 “정치는 어른들만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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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집회 참여 청소년에게 들어보니

100만 촛불 뒤에는 10대가 있었다. 똑소리 나게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을 보며 투표권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1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마자 “수능 끝 하야 시작”이라며 고3들이 가세했다. 10대들은 이렇게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고 겪었을까. 중앙일보가 만드는 청소년 매체 TONG(tong.joins.com)은 최근의 시국집회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목소리를 낸 경험이 있는 독자 및 청소년 기자 20여 명과 단체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어른들에게 할 말이 많았다. 모든 등장 인물은 가명으로 적는다.

우리도 동등한 시민·국민인데
“대견하다” 칭찬하는 시선 불편
“공부나 해라” 혼내는 할아버지도

“왜 필요할 때만 청소년에 관심 가지는지 모르겠네요. 늘 목소리를 내지 않았나요? 우리도 시민이고 국민이니까 똑같이 분노하는 겁니다.”(마인권·중3·제주)

청춘리포트 TONG의 채팅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급당 1명, 많게는 10명이 최근의 시국 집회에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빼고 싶어 나간 이들부터 직접 집회를 주최한 이들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청소년 안에서도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청춘리포트 TONG의 채팅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급당 1명, 많게는 10명이 최근의 시국 집회에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빼고 싶어 나간 이들부터 직접 집회를 주최한 이들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청소년 안에서도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이들은 어른들의 오해부터 바로잡았다. 10대들이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새로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석자들 상당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이 불거지기 이전에 국정교과서 반대집회, 세월호 추모집회, 수요집회 등에 참석한 경험이 있었다. 최근에 벌어진 청소년의 정치 행동에는 미디어의 주목과 칭찬세례가 쏟아졌다. 그러나 ‘기특하다’ ‘대견한 10대들’이라는 시선은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10대는 미숙하고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는 차별을 내포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고맙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른들이 ‘10대는 이래야 한다’고 규정해 놓고 판단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박혁수·고2·경남)

같은 맥락에서 중고생연대가 주최한 지난 5일 청소년의 시국선언 당시 ‘가급적 교복을 입고 오라’고 권고한 걸 두고 청소년 운동가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교복은 집회 현장에선 청소년도 나왔다는 상징적인 기호인 반면, ‘학생’이라는 프레임 안에 가둬 동등하지 못한 시선으로 소비되게 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청소년의 참여를 방해하는 요소도 많다고 지적했다. 홍리혜(고1·경기)양은 “반에 ‘교실박근위험혜 하야하야 순시려’라고 붙였는데 선생님이 ‘이런 걸 왜 붙이냐’며 떼 가셨다”고 말했다. 나아가 학칙 등으로 학생의 정치활동 자체를 금지하는 사례가 적잖다. 최대 퇴학까지 가능한 곳도 있다. 최세원(고2·경기)양은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다가 5분 만에 떼이고 교감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청소년의 정치 활동은 경기도 조례에도 어긋나지 않는 일인데, 조례와 헌법 위에 학칙이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지난 19일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전국 청소년 비상행동’ 사전 집회. [뉴시스]

지난 19일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전국 청소년 비상행동’ 사전 집회. [뉴시스]

제재 혹은 지지 정도는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최영일(고1·서울) 학생은 “주변 학교, 특히 여고 중에서는 집회에 참가하면 생활기록부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압박한 경우가 많았다”며 “반면 우리 학교는 교내 방송으로 집회에 참가하라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이들의 부모는 대개 40대 후반~50대로 젊은 시절 민주화를 쟁취한 세대다. 하지만 “기왕 갔으면 밤새우고 오라”거나 “나간 김에 자유발언도 하라”고 격려하는가 하면, “시위 해 봤자 달라지는 것 없다”며 말리기도 했다. 라미란(고2·전남)양은 “아버지는 전남대 재학 시절 화염병 던져본 운동권 출신이다. 그러나 경험보다는 지식을 쌓을 나이라고, 위험하다고 반대하신다”고 말했다. 최세원양은 “우리 아버지도 왕년에 운동권이었는데 그동안 말리셨다. 그래도 꾸준히 활동했더니 이번엔 ‘우리 세대가 못 바꾼 걸 너희 세대가 해낼 차례다. 바꾸고 와라’라며 적극 지지하셨다”고 말했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집회 현장에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김혜수(고2·서울)양은 “국정교과서 반대 시위할 때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라며 혼내는 할아버지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성차별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세원양은 “현장에서 ‘여학생이 이런 데 치마 입고 나오면 좀 그렇지’라고 말하거나 ‘시선추행’을 하는 아저씨들이 있다”며 “집회 참가 사진이 기사에 떴는데 다리가 예쁘네, 드세게 생겼네, 남자가 따라다니겠네 등의 댓글이 달리는 걸 보고 불쾌했다”고 말했다.

술이나 담배, 욕설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최영일군은 “중고생연대 집회에 참여했는데 어르신들이 ‘중·고생이 우리 자리를 빼앗았다’고 앞에서 대놓고 담배 피우고 욕하셨다”며 난감해했다. 박민주(고1·경기)군은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가면 연기가 자욱하다. 어린아이들도 많이 오는데 집회 현장에서 술과 담배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인원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촛불 자체가 위험해 보인다는 우려도 나왔다. 공신일(고1·서울)군은 “새로 산 점퍼에 촛농이 떨어졌고, 몇 번은 얼굴에 열기가 느껴지기도 했다”며 스마트폰 촛불 앱이나 LED 초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메시지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서유민(고2·전북)양은 “처음 참가하는 시위였는데 대안이나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하야하라’고만 외쳐서 놀랐다”고 돌아봤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하긴 했지만 촛불집회는 대체로 희망을 안겨준 긍정적 경험이었다. 학생들은 “소위 ‘최순실 증후군’으로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광화문에 나가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졌다”(김혜수),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였나 실망하고 있었는데 시민의식을 보고 ‘아직은 괜찮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최영일)고 입을 모았다. 서유민양은 “국기에 대한 맹세에 나오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라는 마음이 샘솟았다”고 말했다.

대화에 참여한 거의 모두가 앞으로도 집회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김현도(고3·전북)군은 “대학별 논술고사 보러 서울 가는 김에 집회에 참가할 거다. 부모님 세대가 민주화에 불을 붙였으니 우린 기름을 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서 거리로 나섰다고 말했다.

“사실 정치는 어른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다음의 ‘국정 교과서 세대’가 걱정된다. 우리 세대에선 안 되더라도, 다음 세대는 조금 더 평등한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변아름·여·중3·경기)

집회 주최하려면 장소 섭외 먼저, 경찰서에 신고도 해야

지난 10일 충남 천안에서 청소년 시국선언을 주최한 천안여고 3학년의 목소리로 집회 준비 과정을 들려줄게.

가장 먼저 할 일은 장소 섭외. 천안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신부문화공원을 택했어. 상인회에 연락해 이용가능 시간과 사용료를 확인했지. 우리는 전기 1만원, 음향 5만원이 들었는데, 혹시 음향시설을 구할 수 있다면 미리 확보하면 좋겠지. 식순은 다른 집회에서 본 걸 참고해서 짰어. 지루하지 않도록 여러 학교 학생들이 번갈아 나오게 구성했고, 중간중간에 노래를 부르는 무대도 넣었어. 홍보도 중요해. 우리는 천안 각 고등학교 전교회장에게 전파해 학교마다 참가할 사람을 모았어. 또 포스터를 만들어 페이스북에도 올렸고.

집회신고는 관할 경찰서에 늦어도 집회 이틀 전에는 해야 해. 날짜·장소·예상인원·대표자·질서유지인 등을 적어야 해. 질서유지인은 만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예상 참가자 수의 5~10%는 확보해야 해. 초와 종이컵, 우비, 피켓과 홀더 같은 물품도 준비해야 해. 당초 초는 500원에 팔고 피켓은 각자 준비하려 했는데, 우연히 물품을 지원받게 됐어. 각종 시민단체에 요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글=이도현(천안여고 1)·박건희·정은지(천안여고 2) TONG청소년기자

이경희·박성조 기자 dungle@joongang.co.kr
※청소년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과 자세한 집회 주최 매뉴얼은 tong.joins.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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