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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인기작가] 앤서니 브라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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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미소부터 지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 쉰일곱의 이 작가는 사실적 그림을 통해 환상을 빚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고릴라의 터럭, 집안의 벽지 무늬까지 그려내는 사실적 기법의 그림으로 현실에는 없는 인간화된 고릴라 주인공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것도 어른 독자까지 배꼽 빠지게 만드는 유머 감각을 가미해서 말이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그의 작품은 '고릴라'(비룡소)다. 그가 어린 시절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영화 '킹콩' 같은 우람한 고릴라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브라운의 다른 작품처럼 웃기다고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슬프다. 일만 하고 아이를 위해 짬을 내지 않는 아빠와 좋아하는 고릴라를 직접 보러 동물원에 가는 게 소원인 아이의 이야기다.

어두컴컴한 거실 한 귀퉁이에서 차디찬 샌드위치 한조각을 접시에 받쳐들고 TV를 멍하니 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현대 가정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터널''동물원'(논장) 도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을 다룬 작품이다. '터널'은 겁쟁이 동생과 놀기 싫었던 오빠와 무서움을 이기고 터널 속을 들어가 오빠를 구해낸 동생간의 화해를 그렸다.

'동물원'에서는 심술맞은 뚱뚱한 아버지, 가냘프고 힘없는 엄마, 동생과 티격태격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돼지책'(웅진닷컴)은 가사일에 지친 엄마가 가출을 하고, 남은 아빠와 아이들이 돼지우리 같은 집에서 돼지 같은 모습으로 산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슬피기만 할 것 같은 이들 책도 유심히 봐야 한다. 책장 곳곳에 재미난 그림이 숨겨져 있다. 고릴라를 좋아하는 아이가 고릴라와 극장 가는 꿈을 꾸는데, 해당 영화 장면에선 슈퍼맨 옷을 입고 있는 고릴라, 자유의 여신상이 아닌 자유의 고릴라상이 나온다.

그런데 '윌리 시리즈'로 가면 슬픈 웃음은 잊어버려도 좋다. '미술관에 간 윌리'(웅진닷컴)는 모나리자 얼굴 대신 씩 웃는 고릴라 윌리가 그려져 있는 식으로 명화 속에 윌리를 대입시켰다. 약골 윌리가 몸집 큰 벌렁코를 기지를 발휘해 한방에 물리친다는 '윌리와 악당 벌렁코'(웅진닷컴)도 재미있는 코미디 같다.

머리카락을 정확히 5대 5로 갈라붙인 윌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또 삼각팬티를 입고 근육을 자랑하는 다른 고릴라 앞에서 주눅드는 표정도 폭소를 자아낸다. 완성도 높은 그림, 깊이 있는 주제, 그리고 작품 전편에 흐르는 유머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앉아 읽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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