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가진 게 많은 쪽이 몸조심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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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32강전 2국> ●·이세돌 9단 ○·랴오싱원 5단

13보(140~155)=바둑판 위의 상황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에 ‘부자 몸조심’이란 말이 있다. 형세가 많이 유리하면 알기 쉬운 안전한 행마로 일관한다는 뜻인데 지금 이세돌의 반면 운영이 딱 그렇다. 40으로 붙였을 때 바로 틀어막지 않고 한발 물러난 41이 그런데, 계속 고개를 끄덕이던 국가대표 검토진도 47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거, 무슨 다른 변수가 있나요? 지금까지 검토된 그림으로는 ‘참고도’ 흑1로 끊어도 별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요.”

47로는 ‘참고도’ 흑1로 차단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수순도 아니다. 흑7 다음 백8로 패를 유도하려 해도 가만히 흑9로 부딪쳐 백이 안 된다. 48, 50으로 침투했던 백 일단이 달아나게 된 것은 작지 않다. 이곳에서 흑의 승리가 확정될 것이라는 검토진의 견해는 조금 미루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흑이 불리하다는 뜻은 아니다. 느긋하게 물러설 수 있는 곳에서도 수만 보이면 최강의 독수를 날리는 이세돌이 타협의 카드를 받아들였다는 건 그만큼 형세가 좋다는 뜻이다. 앞에서 말한 ‘부자 몸조심’이다. 52로 머리를 내밀어 완전히 빠져나갈 때 상변 쪽 53을 선수하고 돌아와 55로 찝는다. 흑A로 건너는 수단만 생각했는데 그런 수도 있었나?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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