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땐 김기춘이 ‘탄핵 검사’…이번엔 저승사자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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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고민이 크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분석 때문이다. 탄핵심판 절차를 밟는 동안 ‘함정’이 있다는 판단이다.

◆‘기춘 대원군’이 없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경우 탄핵법정의 ‘검사’ 역할은 탄핵소추위원이 맡는다. 탄핵소추위원은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맡는다. 소추위원은 탄핵심판이 열리면 피청구인(대통령)을 신문할 수도 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국회의 탄핵소추위원인 국회 법사위원장은 한나라당 소속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그의 상대인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간사는 당시 문재인 변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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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야권은 ▶선거법 위반 등 국법 문란 ▶측근 비리 등 부정부패 ▶경제와 국정 파탄이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김 전 의원은 이에 더해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신임 여부를 국회의원 총선거와 연계하겠다고 한 발언도 탄핵사유에 추가하는가 하면 탄핵 심판 도중 직접 나서 “자숙해야 할 피청구인(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사람들을 청와대로 불러 선거에 대해 언급한 것은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헌법재판관 2명 내년 초 임기 만료
대통령이 후임 임명 안 할 경우
7명 중 2명만 반대하면 탄핵 기각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측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뇌물수수 사실이 드러나자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언했고, 국민이 재신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총선 결과와 연계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의 적극 공세에도 그해 5월 14일 헌재는 탄핵안 ‘기각’을 결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은 인정했지만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만큼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 다.

만약 20대 국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경우 탄핵소추위원이 될 현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 비박(非朴)계 권성동 의원이다. 권 의원은 지난 17일 특검법의 법사위 통과를 막아섰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권 의원이 비박계라고 해도 대통령을 상대로 얼마나 강하게 탄핵을 주장할 수 있겠느냐”고 의심했다.

◆헌법재판관 구도도 달라

대통령 탄핵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소장 포함)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현 재판관 9명은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9명 중 박한철 헌재 소장과 안창호 재판관은 공안검사 출신이고,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박 대통령이 추천했다.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박한철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 등 2명은 내년 초(1~3월) 임기를 마친다. 만약 박 대통령이 후임을 임명하지 않으면 7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탄핵이 현실화된다. 2명만 반대해도 탄핵안은 기각이라는 의미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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