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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신 못 차린 친박, 반격이 아니라 물러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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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야권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에 대해 “인민재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비난했다. 조원진 최고위원 등 친박 지도부는 당의 쇄신을 요구하는 비박 의원들을 향해 “차라리 탈당하라”고 반격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가당찮은 언급이고, 적반하장이다. 온 나라가 최순실 쓰나미에 떠밀려 국정이 표류한 게 한 달 가까이 지났다. 국가 위기를 자초한 전적인 책임이 있는 박 대통령은 이젠 검찰 조사마저 시간 끌기로 버티고 있다. 분노와 배신감을 넘어 어이 없다는 민심이 주말 촛불집회로 향하는 마당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 대표를 비롯한 친박 지도부가 박 대통령의 아바타 노릇이나 하면서 억지를 부리니 딱하고 괴이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이 대표는 당 대표가 되기 전부터 청와대 정무·홍보 수석을 지내며 대통령의 최측근에 있던 사람이다.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부터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마땅한 이번 사태의 공동책임자 중 한 사람이다. 이 대표나 친박계가 그동안 최씨나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언했더라면 오늘의 국정 시스템 붕괴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균형 감각도 없고, 사리 분별도 못하면서 오로지 박 대통령과 청와대 방패 노릇에만 급급했던 게 친박이란 특이한 정치 집단이다. 대통령 의중이라면 옳은지 그른지 따져보지도 않고 편 가르고 배신자로 몰던 사람들이 난국에 올바른 상황 판단마저 그르치고 있으니 한심하다.

 나라의 존망이 풍전등화다. 새누리당은 사태 수습의 책임 있는 주체로서 혼란에 빠진 박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견인해야 한다. 당을 쇄신하고 재정비하는 게 정국 수습의 첩경이다. 이 대표와 친박 지도부가 정말로 나라와 당을 걱정하고 박 대통령을 생각한다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하루속히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 총체적 난국에 처한 당과 정국을 이끌어갈 역량과 지도력, 도덕적 정당성마저 갖지 못한 친박계 지도부가 사태 수습의 주체가 되겠다니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야 추락을 거듭하는 새누리당 지지율도 하락을 멈추고 보수가 공멸하는 파국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