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사진관] 야만이 지나간 자리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한 곳에 모아진다.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파장 때문에 최순실 이외의 모든 것이 파묻혔다. 대한민국의 절대권력자 조차 조연으로 끌어내린 강남 아줌마 한 명의 삶의 궤적은 대한민국 보통사람의 성실한 삶을 조롱한다.

님루드 유적의 파손 규모는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어떤 유물이 어느 정도 파괴되고 어떤 유물이 서방세계로 유출되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사진은 IS가 저지른 만행의 극히 일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AP=뉴시스]

진상이 불거지기 전까지 존재조차 모르던 이 여자로 인해 무엇이 진실인지, 우리 사회에 과연 진실이 필요한 것인지, 그 진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회 전반의 일반적 가치관이 모욕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이런 비용을 치르지만 결국 인간사회는 상처를 극복하고 점차 진화하는 것이라고 믿고싶다. 야만은 잠깐은 몰라도 오랜 시간 버틸 수 없다. 버텨서도 안된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라크군이 지난 13일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 인근의 고대도시 님루드를 탈환했다. 님루드는 티그리스강변의 고대 아시리아 왕국의 도시다. 아시리아 왕국은 전성기인 기원전 7세기 현재의 중동 지역 대부분은 물론 서아시아 내륙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던 강력한 국가였고 님루드는 이 왕국의 주요 거점이었다.

2014년 6월 IS가 점령하기 전까지 님루드엔 동상과 비석,왕의 무덤 등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보여주는 유적이 산재해 있었다. IS는 2년이 넘는 점령기간 동안 고대 인류문명을 증거하는 유적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망치와 드릴,군용 자동차를 동원한 파괴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야만은 물러가고 문명은 폐허로 남았다. 17일 외신이 보내온 님루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파괴 사진은 오염된 종교가 인간 문명에 어떤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지는 시절이다.

글=김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