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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헌법 제1조의 가치, 다시 한번 되새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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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다니엘 린데만 독일인 전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다니엘 린데만
독일인
전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지난 몇 주 동안 주말마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이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대해 새롭게 배우면서 역사적 순간의 증인이 되는 느낌이다. 인상 깊었던 것이 사람들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을 써서 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한 달 전 토크 콘서트를 준비하느라 한국과 독일의 헌법을 찾아봤는데 이를 다시 보게 돼 놀랐다. 이를 계기로 헌법 제1조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독일연방공화국의 헌법인 기본법 제1조는 서로 다르다. 한국은 다음과 같다.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독일은 이렇다. 1)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 2)이에 독일 국민은 세상의 모든 인간공동체와 평화 및 정의의 기초로서 불가침적이고 불가양(不可讓)적인 인권에 대해 확신한다.

헌법 1조는 해당 국가가 중시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중시한다. 독일은 인간 존엄성과 인권·평화를 강조한다. 이런 차이는 역사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한국은 19세기 말부터 1948년 민주공화국을 이룰 때까지 억압적인 제국주의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앞세웠을 것이다. 독일은 세계대전 때 저지른 반인류적 범죄를 반성해 인간 존엄을 기본가치로 내세웠다.

‘비정상회담’에서 ‘혐오 연설도 표현의 자유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미국인 타일러 라쉬는 “혐오적인 발언도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제1 가치가 자유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독일 헌법 제1조를 떠올리며 “자유란 남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해야 하므로 혐오적 연설이나 발언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현재 독일에선 나치와 히틀러를 따르는 극우정당인 독일국가민주당(NPD)의 해산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내년 초 연방재판소에서 결정한다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여러 정당이 존재해야 여론이 다양해진다지만 인간 존엄을 해치는 정당은 헌법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한 나라의 역사가 국민의 가치관을 만들고 이런 가치관이 헌법을 이룬다. 그 헌법을 바탕으로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행동에 나서는 국민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볼 수 있다.

[독일인·전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