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재인·안철수, 새 총리 합의 추천부터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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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박 대통령 퇴진이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가세했다. 두 유력 대선주자의 주장엔 물론 일리가 있다. 무엇보다 국정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나라는 국민적 요구에 박 대통령이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주변에선 그가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얘기가 갈수록 더 분명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국가적 신뢰와 국정 시스템의 붕괴는 전적으로 박 대통령 책임이다. 두 차례의 대국민사과에도 국정 혼선이 크고 깊어진 책임 역시 대통령이 져야 한다. 나라는 국난 수준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행정부는 통째로 마비된 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식물 상태 대통령은 검찰 수사 대상이고, 지리멸렬한 집권당은 사실상 분당 상황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는 게 마땅한 해법이지만 국정 공백과 혼란에 대한 현실적 우려 때문에 그나마 질서 있는 퇴진이 거론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신의 거취를 뭉개고 있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력화된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여소야대 국회다. 야권이야말로 질서 있는 퇴장의 합리적 방안을 찾아내 합의하고 로드맵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야권이 새 총리를 합의 추천하면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든 탄핵 절차에 들어가든 새 총리가 권력 공백을 메우고 국정 정상화의 수순을 밟아갈 길이 열린다. 게다가 거국중립내각은 야권이 먼저 요구한 것이다. 불발된 영수회담도 마찬가지다. 두 야당의 실질적 오너인 두 사람이 진정성이 느껴지는 정국 수습안은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몰아내기만을 외치니 국정 혼란의 장기화를 즐긴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나라 안위가 먼저다. 차기 대선을 고려한 당리당략과 정치적 셈법으론 풀 수 없다. 문·안 두 사람은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수권 역량도 인정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