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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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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4일로 평화적 정부이양의 「절대시간」이 꼭 1년 남게 된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여야대치상황에서 앞으로 1년은 합의개헌→선거→정부이양의 험난한 정치일정을 소화해내기엔 참으로 촉박한 시간이다. 앞으로 1년의 중요성과 의미를 점검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당정사 최초의 평화적 정부이양이 가능한지 알아본다.
▲최상룡교수=좀 역설적인 얘기입니다만 앞으로 닥칠 1년의 가장 확실한 예측은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것, 다시 말해 불안정성이라고 봅니다.
해방후 지금까지 지속돼 온 정치불안정을 감안하면 그 불안정성이란 게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으로「남은 1년」 의 의미는 지난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입니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정통성을 확보한 정권이 비로소 뿌리를 내리느냐하는 문제가 걸려 있고, 경제적으로는 우리 나라 자본주의 발전의 다음 단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이냐, 또 국민의식 면에서는 폭발적이고도 다양한 사회적 욕구가 민주화란 틀 속에 과연 수용돼 발전의 계기를 맞느냐 마느냐하는 방향전환의 분기점이 되기 때문이죠.
▲양건교수=논란의 초점인 개헌문제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성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방 후 8차례의 개헌을 경험했지만 진정한 정치세력간의 합의에 의한 개헌은 한번도 없었지요. 그런 점에서 합의개헌이라는 시도자체가 최초인 셈입니다. 말하자면 진정한 규범력이 있는 헌법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느냐가 이 1년에 달려 있읍니다.
쉬우리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합의」가 시도 된지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야정치세력이 본질문제에서조차 계속 대립상태를 보이고 있어 이 심각한 기로에서 우리가 다시 퇴행의 길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깁니다.
▲한상진교수=개헌을 위한 정치세력간의 합의문제도 그렇지만 정치권 밖의 사회갈등을 올1년 동안 어떻게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수렴하느냐는 문제도 중요한 난제지요. 오늘날 심각한 사회갈등 요인을 수렴, 관리할 장·단기적 비전 없이 근시적인 목전의 정치게임에 급급한다면 설사 일시적으로 합의에 이른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담 등 때문에 결국 다시 파탄에 이르고 마는 단막극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최교수=그 같은 파탄의 단막극이 우리가 바라는 민주화의 방향이 아니라면 누구보다 현 정치세력의 민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대다수 국민이 뭔가 확실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를 바라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반면 안정이 깨지는 것 또한 바라지 않고 있는 것도 명백하지요. 변화와 안정의 동시추구, 일견 상호모순 돼 보이는 국민적 욕구에 대한 의미부여에 있어 정치세력간의 깊은 통찰이 요구됩니다.
평균적 국민은 외로부터의 혁명적 변화도, 그렇다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민주화도 바라지 않고 있읍니다. 따라서 책임 있는 정치 세력이라면 그 같은 방법으로 목적달성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유혹을 이젠 떨어내야 할 것입니다.
▲양교수=어느 특정집단,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의 운영만으로는 국민을 이끌기가 어렵다는 인식도 필요하지요. 60년대 이후 이뤄놓은 사회·경제발전에 힘입어 우리 사회는 지금 고도로 분화된 일정수준 이상의 단계에 와 있읍니다.
그런데도 특히 여권의 경우 그 권위주의적 속성에서 벗어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적이지요. 작년 봄부터 『능동적으로 민주화를 추진하겠다』 고 하면서도 지난 1년 동안 국민이 보기에 나타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박종철군 사건만 해도 그 초기단계에서 『정부가 정말 달라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지만 차차 흐지부지돼 고문이 없어지리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보여지거든요.
여권은 적극적·능동적 민주화조치를 하지 않고 있고, 야권은 일부에서 아직도 급진적 민주화방법을 배제하지 않고 있고, 시간은 촉박하고….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으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읍니다.
▲한교수=게다가 국민들에게는 정치인·정치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심화돼 있어 이러다간 자칫 모두 자멸하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마저 생깁니다.
오늘날 문제가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은 여야 어느 쪽도 2·12총선의 결과를 사전에 아무런 준비 없이 맞게됐기 때문이라는 점도 한가지 원인이라고 봅니다.
2·12의 결과 그전과는 달리 갑자기 비등한 두 세력의 대결모델이 등장, 여당은 미처 대비태세가 없었고 야당도 너무 코너로만 몰았기 때문에 서로 한치라도 물러나면 패배로 인식하는 상황이 조성 됐다고 생각됩니다.
▲최교수=물론 이런 상황의 1차적 책임이 정부·여당에 있읍니다만 야당에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서울대 사회과학대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는 대답이 82· 2%나 차지했읍니다. 그와 함께 민정당과 신민당의 지지도가 둘 다 매우 미약하게 나타났습니다 (둘 다 10%미만). 여러 제한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이 여론조사는 상당한 상식과 통념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지지기반이 약한, 뿌리내리지 못한 정당에 큰 원인이 있지요.
▲양교수=거듭 말씀드렸지만 앞으로 「남은1년」 이 참으로 촉박한 시간임에는 틀림없읍니다만 저는 아직도 합의개헌의 가능성을 믿고 싶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정부·여당의 과감한 민주화 조치, 이를테면 언론기본법폐지나 사면·복권 등의 조치와 국회의원 선거법안의 조속한 제시가 필수적이지요. 내각책임제를 주창하면서도 그에 따른 국회의원선거법을 아직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좀 비약해 말하면 협상에 임하는 구체적 개헌안을 안 내놓은 상태라는 얘기도 됩니다. 여야의 정치게임이 집권경쟁의 양상인데도 집권자를 결정하는 방식을 내놓지 않았거든요. 야당 측은 처음부터 직선제라는 방법을 내놓지 않았읍니까.
민주화조치도 정부·여당의 의지 문제지 야당과는 무관한 문제죠. 야당이 요구하지 않으면 정부·여당은 민주화 조치를 안 하겠다는 말입니까.
민주화조치와 선거법 제시만 이뤄져도 합의개헌의 분위기는 상당히 조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교수=그런 얘기를 야당측에 대해서도 한다면 대통령 중심직선제만 던져 가지고는 합의개헌의 바탕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저는 국민들의 대통령직선제에 대한 요구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직선제를 가능케 하는 조건,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정부·여당 쪽에서도 직선제를 안심하고 고려해볼 수 있는 어떤 조건들을 야당이 제시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최교수=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됩니다만 이른바 실세대화가 결국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시가 시급한 정치일정을 생각하면 실세대화라는 것도 빠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합니다. 실세가 허심탄회하게 만나 산적한 정치일정의 매듭을 풀어 가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요. 그러려면 쌍방이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고, 정치적 또는 인간적으로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인간적 증오차원 등을 뛰어넘는 정치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실세대화의 결정권을 쥔 곳 역시 여권이라는 점에서 우선 여당의 자세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고 봐야겠지요.
▲한교수=도시인구의 30∼40%가 이미 중산층 요건을 갖추고 있고 「주관적 중산층」 까지 합치면 80%에 이르고 있읍니다. 이 중산층이 갈망하는 민주화는 「혁명적」방법이 아닌 선거를 통한 사회·경제적 개혁입니다.
일정수준에 오른 그 중산층들에게 어필하는 정치적 리더십은 남북통일문제, 정치지도자의 윤리문제 등도 있겠으나 역시 눈앞의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아니라 국민적 열망인 민주화 추진욕구를 유산시키지 않고 사회경제적 개혁으로까지 이끌어갈 수 있는 의지와 실천력을 보이는 것일 겁니다.
▲양교수=의회민주주의를 지탱하려면 여든 야든 중산층의 의식과 동향에 무관심할 수 없고 또 크게 의식하는 게 당연한데도 현실정치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신중산층의 민주화 욕구를 채워주는 점에 있어서도 집권층의 결단이 우선은 거의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군요.
▲최교수=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도 없고, 그렇다고 생계유지가 급한 빈민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도 없는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입니다.
집권 여당은 국민들의 마음을 너무 읽지 않고 있고, 그에 반해 야당측은 국민의 마음을 너무 과다하게 읽어 직선제에 대한 지지가 곧 자기들의 개개정치 행태에 대한 지지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잘못된 민의 파악을 극복하고 진정한 민의를 읽는 안목이 양쪽에 필요하고 그 선상에서 일대 대타협의 출발이 이뤄져야 앞으로 남은1년이 허송세월로 끝나지 않겠지요.
▲한교수=우리는 지금 긍정적 방향과 비관적 방향의 선택의 기로에 와 있읍니다. 한 길은 국민전체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풍부한 인적자원 속에 전반적 사회발전의 과정으로 가는 방향이고, 다른 한 길은 여야정치세력은 물론 온 국민이 자멸할지도 모를 파괴적 방향입니다.
또 설사 긍정의 방향을 택해 두 세력이 어렵게, 어렵게 난산의 합의를 도출하더라도 정치적 위험수위를 가까스로 넘길 뿐 또 한가지 시급한 과제인 사회적 갈등해소의 준비나 태세를 못 갖추게 됨에 따라 결국은 파괴적 방향으로 가게 될 우려가 크다고 봅니다.
▲양교수=긍정의 선택을 위해 시민이 「비토그룹」이 됐으면 합니다. 특히 중심세력인 중산층이 이제「밀폐 된 투표소 안에서의 권리행사」 에만 만족할게 아니라 적극적인 발언을 통해 투표권의 행사가 곧 자기들이 바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여야정치인에 대해 압력을 줘야 할 것입니다.
▲최교수=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여야합의가 유산됐을 경우 우리는 비유컨대 민주화이전의 남미상황을 그려볼수 있겠죠. 결국 사회적 갈등까지 흡수할 수 있는 합의의 틀을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읍니다.

<정리=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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