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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걸어요” “물 새요”…이웃 갈등 절반이 소음·누수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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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동대문구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김모(75)씨는 4년째 개 짓는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모텔 바로 옆엔 강아지 스무 마리가량을 키우는 동물보호시설이 있다. 손님들의 항의도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동물보호시설에 찾아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항의하는 김씨에 대해 그쪽도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김씨는 결국 지난 6월 말 ‘서울이웃분쟁조정센터’(이하 조정센터)로 갔다. 조정센터가 중재에 나선 지 한 달 만에 동물보호시설 측은 방음장치를 설치하고 큰 소리를 내는 대형견 수를 줄이기로 약속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다.

서울이웃분쟁조정센터 통계 분석
흡연·매연·악취 9%, 주차 시비 5%
반려견 소음 피해 신고도 늘어나

서울시민이 이웃과 빚는 갈등 요인 중 ‘소음’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운영을 시작한 분쟁센터에 신고된 666건의 민원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분쟁센터에 따르면 올 하반기(6월 22일~11월 10일)에 접수된 전체 민원 중 소음 관련이 246건(36.9%)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누수(103건, 15.5%), 흡연·매연·악취(9%, 60건) 순이었다.

‘층간 소음’ 못지않게 ‘반려견으로 인한 소음’도 갈등 요인이었다.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에 사는 김모(46)씨는 단지 건너편 차량정비소에서 키우는 대형견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정비소 직원들이 퇴근한 밤에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거나 차량 전조등 불빛을 볼 때마다 사납게 짖어대는 바람에 새벽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김씨는 이웃 간에 얼굴 붉히기 싫어 속앓이를 하다가 지난 7월 분쟁센터에 해결을 요청했다. 결국 분쟁센터가 나섰고 정비소 직원이 퇴근할 때 개를 사무실 안에 들여놓기로 약속해 문제를 해결했다.

누수로 인한 이웃 간 갈등도 빈번했다. 주로 낡은 주택이나 주택 내부 인테리어 재시공 이후에 누수 문제가 생겼다.

한 예로 서대문구의 한 빌라에 사는 박모(36)씨는 위층 주방 싱크대 부근 누수로 인해 집 천장 벽지가 누렇게 변하고 들뜨는 현상을 겪었다. 위층 주민이 해결해 주겠다는 말만 믿고 수개월을 기다렸지만 바뀌지 않았다. 지난달 분쟁센터가 나선 후 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권석진 서울시 법률지원담당관 주무관은 “서울시민의 주거 형태가 아파트·빌라 같이 위아래 층이 있는 공동주택인 경우가 83%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층간 소음·누수 같은 민원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두 개 문제가 함께 벌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웃 간 ‘주차 시비’(5.4%, 36건)도 빠질 수 없는 민원 사항이다. 양천구에 사는 이모(43)씨의 집은 이웃인 안모(52)씨 집과 막다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다. 골목은 제3자의 땅인데도 안씨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며 주차를 못하게 해 9월 분쟁센터에 조정을 신청했다. 분쟁센터의 개입 뒤 서로 화해해 공간을 나눠 쓰게 됐다.

권 주무관은 “갈등 당사자들이 만나면 폭력까지 벌어져 갈등만 커지는 경우가 많고 민사소송 같은 법적 다툼에 이르기도 한다”며 “이웃 간 갈등이 감정·법률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분쟁센터가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쟁센터에는 변호사(14명)·법무사(3명)·변리사(1명) 등으로 구성된 조정위원 24명이 활동하고 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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