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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과 확실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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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8일 트럼프의 깜짝 승리로 절반의 미국인과 대부분의 세계인이 큰 충격을 받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기 위한 시도가 끝없이 계속될 것이지만 내가 보기에 트럼프의 승리 원인은 다음과 같이 간단한 설명으로 정리될 수 있다. 지난 15년간 미국인 중 60%의 실질소득이 감소했다. 문제는 이라크, 금융위기, 오바마케어 문제에 우왕좌왕하고 러시아·중국·북한의 공세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정부였다. 오바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포착한 미국 공화당의 기성 정치인들은 지지 기반인 나이 많은 백인 보수주의자에 인구가 늘고 있는 히스패닉 그룹 등의 지지를 끌어오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젭 부시나 마코 루비오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백인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반대 전략을 취했다. 백인들이 처한 문제는 이민자·무슬림과 자유무역협정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두 배다. 트럼프는 나라의 방향을 바꿀 뿐만 아니라 민주당·공화당의 기득권 세력을 응징하겠다고 약속한 유일한 후보였다.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했던 유권자들에게 이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주장이나 필리핀의 두테르테의 메시지만큼이나 간단하고 강력한 필승의 메시지였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부패한 기득권자로 보였기에 자신의 지지 기반인 여성·흑인, 젊은이들의 열정을 돋우는 데 실패했다.

이제 미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될 것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동맹·핵무기·무역·러시아·시민자유·여성·장애인·언론에 대한 트럼프의 파괴적 발언은 많은 미국인과 세계인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 전역의 작은 도시 사람들이 트럼프를 찍은 이유를 기억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바란 것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 것도, 한국·일본의 핵무장도, 무슬림들이 미국에 못 들어오게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는 그가 워싱턴DC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많은 미국인이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의 동맹 관계를 지지하며 아직 다수가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즉 미국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그의 정책 제안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트럼프는 현대 미국 헌정사에서 가장 빈약한 정책 어젠다를 들고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이는 불확실성의 원인이지만 우리는 큰 틀에서 몇 가지 테마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트럼프는 능력 있는 인사들을 외교·국방 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부터 시작해 마이크 로저스 전 하원의원, 밥 코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 등이 내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트럼프 국가안보팀의 든든한 기둥이 될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는 그의 반워싱턴 성향을 입증하기 위해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을 국가 안보 분야 공직에 임명할 것이다. 경험 없고 변덕스러운 그들은 동맹국과 국무부·국방부의 관료들을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전통파(traditionalists)가 결국 승리하겠지만 관료들이나 동맹국들은 즐겁지 않을 것이다.

둘째,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비를 늘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의 위협을 감안하면 이는 좋은 일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포함해 마사일 방어는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셋째,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다른 자유무역협정을 한쪽으로 치워둘 것이다. 트럼프는 모든 무역협정들이 미국 근로자들에게 재앙이었다고 주장했다(물론 데이터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더 나은 협정을 맺겠다고도 말했다. 트럼프는 무역과 세계화를 공격함으로써 민주당의 텃밭이던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겼다. 그러나 공화당 지지 세력에는 기업과 농민도 포함되기 때문에 그는 결국 수출 확대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역 어젠다는 적어도 1년간 동결되겠지만 새로운 우파 무역 어젠다가 트럼프 임기 내에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아한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한 그의 수락 연설을 보면 그의 언행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승리뿐이라고 말한다.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으니 이제 통치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말이다. 재계에서 그를 수십 년 동안 접해 본 사람들은 그가 선거 기간에 선보인 최악의 행동들이 백악관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트럼프가 정책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정책 개발과 실행을 내각에 맡기고 생색만 낼 것이라고 내다본다.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미국인들은 효과적이며 세계 무대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을 바란다. 트럼프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의 임기는 4년으로 끝날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