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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삼성, 9조 들여 자동차에 가속페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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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삼성, 자동차 전장 분야 세계 1위 하만 9조에 인수

삼성전자가 자동차 산업을 확대한다.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 중 최대 규모인 80억 달러(약 9조원)를 주고 미국의 자동차 전자장비 전문기업 하만을 인수했다. 하만은 자동차용 오디오 등 자동차 전장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이다. 삼성전자가 정보통신기술과 자동차를 연결한 ‘커넥티드 카’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확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오디오 업체 하먼이 홈페이지에 ‘커넥티드카 세계 1위’라는 문구와 함께 띄워놓은 차량 내부 사진. [홈페이지 캡처]

미국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오디오 업체 하먼이 홈페이지에 ‘커넥티드카 세계 1위’라는 문구와 함께 띄워놓은 차량 내부 사진. [홈페이지 캡처]

‘하만’인수 국내 최대 M&A

삼성전자가 커넥티트카(Connected Car)와 오디오 분야 전문기업인 하만을 인수키로 한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동차와 IT의 결합’에서 성장 동력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자에 이어 자동차 사업으로 가속페달을 세게 밟은 것이다. 일단 인수 금액이 역대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M&A) 중 최대인 80억 달러(약 9조3000억원)인 점에서 그렇다.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삼성은 주당 112달러에 하만 지분 전량을 인수했다. 2014년 ‘삼성-한화 빅딜’ 당시 삼성이 삼성테크윈·삼성종합화학·삼삼성탈레스·삼성토탈 4개 사를 넘겨주고 1조9000억원을 받은 것에 비춰보면 이번 딜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인수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 선임된 후 내놓은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는다.

이재용

이재용

전 세계 최고급 오디오 브랜드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오디오 공룡’ 하만은 최근 10여 년 동안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투자에 공을 들여 왔다. 인포테인먼트는 길 안내 같은 정보와 음악·영상 같은 콘텐트 제공을 합친 전자기기 분야를 뜻한다. 시장조사기관 알앤알마켓리서치 조사에서도 지난해 기준 하만의 인포테인먼트 분야 매출액은 43억2000만 달러(약 5조740억원)로 2위인 독일 콘티넨탈(32억1000만 달러)을 넉넉한 격차로 앞서 있다. 하만은 삼성이 인수하기 직전 12개월 기준으로 매출 70억 달러, 영업이익 7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매출의 60%가량이 전장사업에서 발생한 것이다.

최고급 오디오 시장의 최강자인 하만은 차량용 오디오 시스템에서도 독보적 기술력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운영체제(OS)는 물론, 각종 네트워크와 차량 간 통신을 제어하는 전자제어장치(ECU)까지 영역을 넓혔다. 미래의 자동차로 일컬어지는 커넥티드카 개발에 하만이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커넥티드카 기술이 완성되면 실시간으로 도로 상황, 교통 상태 등 정보를 주고받거나 차량 간 위치 정보 등을 공유해 자율주행 기술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궁극적인 미래형 자율주행차의 완성형이 커넥티드카일 것으로 예상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지금도 세계 완성차 업체의 80%가량이 하만의 OS와 소프트웨어를 직간접적으로 사용한다.

차와 인터넷·도로 정보 공유
커넥티드카 기술 압도적
관련업계 80%가 하만 OS 써

삼성전자도 2015년 12월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면서 이 분야에 공을 들여 왔다. 그러나 새롭게 내놓는 기술이 많지 않아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장사업 분야에서 조기에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 후보를 물색해 오다 지난 9월부터 하만과 본격 인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거액을 선뜻 쓴 것은 커넥티드카 시장의 성장 전망이 그만큼 밝아서다. 업계에서는 커넥티드카 시장이 매년 9%씩 성장해 2025년 1864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만이 현재의 시장점유율 55%만 유지해도 연간 10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현재 전 세계 TV시장이 1000억 달러 규모다.

기술 시너지 효과도 크다. 삼성전자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통신기술 분야와 하만이 경쟁력을 갖춘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 기술이 결합되면 자동차 탑승자들은 선명한 화면으로 보다 빠르게 자동차와 커뮤니케이션하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이세철 NH증권 연구위원은 “자동차가 지능화·네트워크화되고 자율주행 기능이 강화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개인화된 서비스, 각종 업무,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두 기술 공룡 간의 M&A는 글로벌 자동차와 소프트웨어 업계에 상당한 충격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미 완성차의 성능은 업체별로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는 만큼 오디오와 같은 감성품질은 물론, 커넥티드카 같은 미래 기술이 앞으로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라며 “오랫동안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가져 온 삼성의 하만 인수가 완성차 업계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하만의 주주와 정부기관의 승인을 거쳐 내년 3분기까지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인수 이후에도 삼성전자는 현 경영진에 하만 운영을 맡길 계획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하만이 보유한 전장사업 노하우와 방대한 고객 네트워크에 삼성의 IT와 모바일 기술, 부품사업 역량을 결합해 커넥티드카 분야의 새로운 플랫폼을 주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태희·이동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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