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심 TPP 사실상 좌초…중국의 RCEP가 대안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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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나이절 패라지 영국 독립당 대표. 패라지는 트럼프가 당선 후 처음 만난 영국 정치인이다. 패라지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그는 느긋했고 아이디어로 충만했다. 좋은 대통령이 될 거라 확신한다”고 썼다. [나이절 패라지 트위터]

12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나이절 패라지 영국 독립당 대표. 패라지는 트럼프가 당선 후 처음 만난 영국 정치인이다. 패라지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그는 느긋했고 아이디어로 충만했다. 좋은 대통령이 될 거라 확신한다”고 썼다. [나이절 패라지 트위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좌초했다.

트럼프 취임 100일 내 폐기 계획
미 의회는 "TPP 연내 비준 포기"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결정적 변수가 됐다. 이미 미 의회는 연내 TPP 비준 승인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당선인도 대통령 취임 직후 TPP 폐기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TPP는 사실상 죽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TPP 폐기는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트럼프는 그동안 “TPP가 미국의 제조업을 파괴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당선이 TPP를 응급실로 싣고 왔다면, TPP 사망은 의회가 결정했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지만, 아직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중 마지막이 될 ‘레임덕 회기’에서 TPP 비준을 처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원 리더인 미치 멕코넬(공화당)과 척 슈머(민주당) 의원은 TPP 비준안을 트럼프 정부 출범시까지 상원에서 다루지 않기로 합의했다.

오바마 행정부도 손을 들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TPP의 마지막 절차는 의회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이제 트럼프 취임 후 미 정부 차원의 TPP 폐기만 남은 셈이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후 100일 이내에 TPP를 폐기한다는 내용의 인수위원회 정책 로드맵을 입수해 보도했다.

TPP는 미국·일본·캐나다·멕시코·호주·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12개 국이 참여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지난해 10월 잠정 타결돼 각국 의회의 비준 동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TPP를 폐기하면 동력을 잃게 된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경제규모가 가장 큰 미국이 빠진 TPP는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중국이 추진 중이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부진하던 RCEP 협상에 힘을 쏟을 태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 중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20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RCEP의 조속한 타결을 의제로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의 일환으로 TPP를 추진하자 RCEP으로 대응해왔다. RCEP은 관세차별 협정을 목표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인도 등 16개국이 참여 중이다. 하지만 시장개방 수준과 범위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특히 RCEP과 TPP에 중복 참여한 7개국은 이미 타결된 TPP에 더 집중했다. 하지만 TPP 무산이 현실화하면서 RCEP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은 “TPP 붕괴로 인한 공백에 RCEP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17일 트럼프 당선인과의 회담을 통해 미국의 ‘TPP 잔류’ 에 힘쓸 계획이지만 실패한다면 RCEP에 눈을 돌릴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으로 TPP·RCEP 중복 참가국 입장이 달라져 RCEP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선 기회가 될 수 있다. 심 교수는 “TPP에 들어가지 못한 한국은 그 대안인 RCEP이 경제적 돌파구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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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RCEP도 추진 동력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하려 RCEP을 추진했다”며 “미국이 TPP를 폐기하면 RCEP 추진의 절실함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국시장을 보호하려는 중국이 낮은 수준의 시장 개방도를 주장한다면 실익도 크지 않고 협정 타결이 힘들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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