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온갖 사냥꾼을 다 겪은 맹수, 이세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32강전 2국> ●·이세돌 9단 ○·랴오싱원 5단

8보(80~93)=밀림 깊숙이 들어선 젊은 사냥꾼이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은 ‘노회한 맹수를 상대로 범한 실수는 단 한 번이라도 목숨을 잃는 치명타가 된다’는 것이다. 이세돌은 승부사의 나이로는 절정에서 멀어지는 30대 중반이지만, 밀림의 세계로 치환하면 온갖 사냥꾼을 다 겪은 노회한 맹수다.

랴오싱원은 그다지 치열하지도 않은 좌변과 중앙의 접전에서 단 한 번의 실수로 큼지막한 살점을 뜯겼다. 중앙 백A로 뻗어 흑 대마를 감금하면 흑B로 수를 늘려 그나마 갖고 있던 뼈다귀마저 빼앗긴다. 고통의 현장에 오래 머물러봐야 좋을 일이 있겠나. 우상귀 80은 ‘궁하면 손 빼라’의 실천이 맞다. 이세돌은 싹싹하게 81부터 89까지 우상귀를 내주고 91로 넓게 경계의 울타리를 쳐둔다. 이곳까지 고스란히 흑의 영토가 되면 백은 더 이상 어찌 해볼 엄두가 나지 않을 테니까 92의 침입은 당연한데. 92에 찰싹 붙여간 93의 의도는?

“그런, 솔직한 수가 있었나요?” 한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이 대국을 해설 중이던 이영구 9단이 싱긋, 웃으며 ‘참고도’를 보여준다. 흑의 의도가 이렇다는 것이다. 한때 바보 연기로 절정의 인기를 누린 개그맨의 별명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바둑계에서 이영구 9단에게 붙여준 별명은 ‘록키’다. 할리우드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을 닮은 외모와 돌주먹처럼 단단한 기풍 때문이다.

손종수 객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