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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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FBI』라는 미국 TV드라머가 10여년전 우리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모은 적이 있었다. 명수사관으로 분장한 「짐발리스트」 2세가 혐의자를 체포할 때면 으례 신분증을 제시하고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의 입회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처럼 묵비권이 모든 형사사법 절차에서 필요불가결한 하나의 「상식」으로 일반에게 정착한 것은 1966년 이른바 「미란다(Miranda)대 애리조나사건」이후다.
이 「미란다사건」 은 63년부터 시작된다. 그해 3월13일 피의자 「어니스트·미란다」는 자기 집에서 체포되어 경찰서에 구금된다. 유인과 강간 혐의다.
그는 수사과 제2호 신문실에서 두명의 경찰관에게 신문을 받았다. 2시간의 신문끝에 「미란다」는 자백했고 자백서에 서명도 했다.
1번에서 피의자의 자백서는 변호인의 이의를 물리치고 증거로 채택되었다. 피고인 「미란다」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두 경찰관은「미란다」가 변호인의 입회권이 있다는 사실을 고지받지 않은 상태에서 신문받았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러나 상소번인 애리조나대법원은 「미란다」의 헌법상 권리는 자백을 얻는 과정에서 침해되지 않았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미란다사건」 은 66년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워런」판사는 애리조나판결을 뒤엎고 『헌법에 보장된 묵비권을 침해하여 취해진 위법한 자백이기 때문에 배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워런」판사의 이 판결은 미국형사사법 발전의 획기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두 경찰관의 「양심」과 사법부의 「양식」 이 이뤄놓은 인권존중의 기념비이기도하다.
「워런」 판사의 판결문에는 『피구금자의 신문은 외부와 격리된 비공개의 상황에서 자백을 얻으려 하는데 그 본질이 있다』고 밝히고『이런 분위기는 항상 강제의 잠재적 가능성을 띠게 되고, 이 강제는 육체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으나 개인의 존엄성을 손상하게 하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으므로 비밀의 신문 그 자체는 강제이며, 불이익한 진술을 강요당 하지 않을 권리와 충돌한다』고 했다.
따라서 『어떤 신문에서든지 반드시 신문전에 묵비권과 변호권을 고지해 주어야 한다』 고 결론내렸다.
우리도 멀지않아 고문 방지 특별기구가 생긴다. 그러나 그런 기구에 앞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인식하는 실천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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