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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책확대로 조기수습 서둘러|「고문치사」회오리 개헌정국 강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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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문치사의 충격파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민정당이 이례적으로 이번 사건의 인책대상에 장관선까지 포함시키는 강경입장을 보여 부분개각이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이며 야당은 각종 방법을 총동원한 대여공세를 펴고 있다.
이번 사건이 터진후 한마디로 민정당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민정당의원들은 이 사건이 표면화되자 즉각 『예감이 좋지않다』 『빨리 수습해야한다』고 이구동성이었고 심지어 『김주열사건이 연상된다』는 등의 민감한 반응까지 나왔다.
개헌·국민투표·총선거등을 앞두고 민정당은 이번 사건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만은 국민이 납득할수 있는 과감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민정당은 내무부가 19일 사건진상 및 인책범위를 발표했을때 즉각 인책범위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당직자들은 19일 상오 회의에서 김종호내무장관이 인책범위를 실무차원에서 매듭지을 방침임을 전해듣고는 모두들 실색, 최소한 정치·도의적 책임을 물어 내무부장관과 치안본부장의 해임까지는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날 회의는 매우 침통한 분위기였으며 처음엔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당직자가 『내무부의 대응책은 사건의 성격과 그 충격파에 대해 제대로 감을 잡지못한 미봉책』이라며 『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정치·사회적 파문을 던질 중대사안인지에 대해 냉철한 인식을 갖고 그에 상응한 정치·도의적 책임을 과감하게 물어야 할것』이라고 제기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기다렸다는듯 거의 전원이 이에 동조했고 회의도증 노태우대표위원은 이춘구사무총장과 함께 대표위원실 안의 밀실로 옮겨 대처방안을 협의, 이날 하오의 당정협의에서 내무장관·치안본부장 인책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총장은 이한동원내총무도 참석한 당정협의에서 여론의 동향과 이의 미온적 수습이 몰고올 개헌정국의 영향등을 종합적으로 분석, 설명한후 당수습안을 역설했고 정부측도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런후 이총장은 따로 청와대로가 당의 수습방안을 진언, 「감」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당은 이같은 인책문제 외에도 고문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수 없다는 차원에서 고문을 근절하는 강력한 정부·여당의 의지천명과 함께 제도적 보완책을 아울러 마련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이의 실현방안도 당정협의에서 논의했다.
이같은 당정협의 결과는 20, 21일 이틀에 걸쳐 정부측에 의해 가시화될 것으로 당은 보고있다.
민정당은 이사건의 심각성, 즉 경찰당국이 사건발생초기에 진실을 은폐·호도하려 한다는 심증을 지난 토요일(17일) 하오부터 깨닫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민정당은 특히 작년의 부천서 성고문사건때 초기단계의 잘못 처리로 호미로 막을수 있었던 사건을 가래로도 못막았다고 판단, 이번만은 두 번 다시 이런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지난 토·일요일에도 당직자회의와 당정회의를 잇달아 열어 수습책을 강구했다.
20일로 예정됐던 노대표의 연두회견 연기를 검토한 것도 지난 17일하오 회의였는데 20일의 당정회의에서 당정간에 수습책에 합의함으로써 그런 조치가 끝난후인 22일로 확정됐다는 것이다.
노대표는 정부측의 고문근절 의지천명과 인사조치를 이어받아 회견에서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민정당은 이 사건을 정황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볼 때 제5공화국출범이래 최대시련을 여당측에 안겨준 사건으로 판단, 이의 정치적 부담과 사회적 영향의 파급을 극소화하려면 과감한 민심수습책이 뒤따라야할 것으로 인식하고있다.
민정당은 우선 신민당이 요구하는 임시국회소집은 곤란하나 법사·내무·문공위등 관련상위를 열어 이 사건의 정치적 정화과정은 불가피하다는 태도다.
또 노대표회견을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여권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번 사건으로 더욱 고단위처방이 필요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민이라는 분위기다.
이처럼 다각도로 노력해도 민심수습에는 최소한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민정당은 보고 있는것 같다.
때문에 당직자들의 입에서 『개헌의 동계작전은 물 건너갔다』는 한탄의 소리가 절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19일 하오 열린 홍보대책 회의에서도 국민들에게 이 사건의 여파를 어떻게 극소화시키느냐에 초점을 모았으나 『시간의 묘약론』 이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고 한다.
홍보대책회의에서 당직자들은 야권의 이 사건에 대한 맹공을 둔화시키고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서는 개헌홍보전략을 지극히 신중히 하고 사려깊게 해야 한다는 원론적 결론밖에 못내렸다고 한다.
박종철군사건으로 생기를 찾은 신민당은 이번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침체했던 기세를 일거에 되찾아 개헌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다.
신민당은 정부·여당측이 내무장관·치안본부강의 해임등으로 사태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이지만 그 선을 넘어 대통령의 「중대결단」 촉구까지 몰아가는 한편 임시국회소집요구 등으로 파상공세를 취하고 있다.
또 한편 전국지구당에 박군 분향소를 설치하고 플래카드를 내걸도록 하여 국민여론에 불을 붙이는 방향으로 확산시킴으로써 퇴색하고 있는 개헌논의에서 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을 작정인데 당지도부 책임을 주장하고 있는 비주류도 이에는 이의를 못다는 실정.
신민당은 이번 사건을 이렇게 확대시켜 최대한 정치무기화하여 정치공세를 펴면서 자연스럽게 「춘투」로 몰아가겠다는 생각인것 같다.
신민당은 20일 상오 정무회의를 열고 전날 확대간부회의에서 결정된 △대통령의 고문근절을 비롯한 민주화조치에 대한 중대결단 촉구 △내무부장관·치안본부장 및 관련자 파면 △임시국회를 소집하고 국정조사권 발동을 위한 진상조사 특위구성 △고문근절을 위한 투쟁계속등을 이견없이 추인함으로써 이번사건에 대한 당의 의지를 확인했다.
이날 정무회의는 이민우파동이후 처음 열려 당초 「당론」문제를 둘러싼 당내문제로 각계파간에 격렬한 충돌이 예상됐었으나 이번 박군사건으로 당내문제는 각 계파가 똑같이 일단 유보한 상태.
회의에 앞서 각 계파는 이날 상오 조찬모임을 가졌는데 회의결론은 한결같이 『박군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중대한 사안인 만큼 집안싸움은 미루자』고 결론.
상도동계는 최형우부총재 주재로 시내 코리아나호텔에서 정무위원 8명이, 동교동계는 이중재 양순직 노승환부총재 주재로 역시 정무위원급 8명이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각각 모임을 갖고 『만약 비주류측이 당내문제를 거론한다면 단호히 봉쇄한다』고 각각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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