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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막으려면 이정현 대표 물러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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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30면

민주공화국의 공적 시스템을 해괴한 사적 집단이 철저하게 유린한 ‘반국가적 범죄’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공범 내지 종범으로 가담한 초현실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의 대상을 모조리 포획하고 매수해,그 법이 금지한 범죄를 모조리 저지른 이 엽기적 스캔들의 주인공들에게 ‘공공성’과 ‘공익’이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공갈과 협박으로 국민의 세금을 전용하고 사기업을 갈취한 것도 모자라 온갖 국가 사업에도 ‘종이 쪼가리’ 한 장 들고 뛰어들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려 했다. 참담한 것은 조폭이 즐겨 쓰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협박)’을 위해 대통령, 장관, 청와대 참모, 고위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부역했다는 사실이다. 듣기로는 최순실의 돈을 받지 않고 돌려준 사람들은 그녀의 딸이 다닌 고등학교 선생님들이라는데 그런 이들에게 ‘커피 대접이 되네, 안 되네’, ‘카네이션이 되네, 안 되네’ 했으니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5%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국민들로부터 탄핵당한 것이다.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미 두 번의 사과를 했지만 앞으로 몇 번을 더 하게 될지 가늠조차 안된다. 국정 중단의 위기를 만든 박 대통령이 “한시도 국정 중단은 안된다”고 남의 말하듯 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말은 맞다. 국정 중단은 막아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회복불능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이 가장 ‘깔끔한’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수개월 간의 국정 공백과 정치권의 이전투구로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내전’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앞으로도의 정국은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인가. 박 대통령, 김병준 총리 후보 지명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이 세 사람의 결단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 대한민국의 무너진 리더십을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하게 다시 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고 새로운 대통령을 다시 뽑는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 “무엇으로도 국민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 스스로 용서하기 힘들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물러나는 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애국이다.


국가의 존망은 생존을 위한 집단의지와 리더십에 달려 있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고, 그런 국민을 존경과 보상으로 끝까지 책임지는 나라가 강한 국가다. 대통령의 역할은 솔선수범(노블레스 오블리주)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집단의지를 강하게 만들어가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완전히 실패했다. 대한민국을 철저히 망가뜨렸다. 이제 국민은 국가를 믿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세금 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공무원의 자부심도 짓밟혔다. 군과 경찰의 충성심과 사기도 땅에 떨어뜨렸다. 국가의 공적시스템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인연”의 사적 이익을 챙기는 데 동원됐다. 국가가 개인에게 충성한 것이다. 그러니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김병준 후보자의 치명적 실수는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민적 공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는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제안을 받은 자리에서, 혹은 지명 발표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대통령께서는 국정 위기의 책임을 인정하시고 수사를 받겠다고 자청하시라. 검찰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수사해서 관련자들을 엄벌해 달라. 야당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야당과 대화가 될 수 있도록 새누리당이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 달라.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안 받아들인다면 총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야당에 총리 후보자로 인정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상황은 대통령의 두번째 사과 담화 후 더 악화됐다. 야당은 총리 지명 철회를 공개 요구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본인이 약속한대로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니 총리를 맡지 않겠다”고 하고 물러나는 것이 좋다.


대통령 하야나 탄핵이 아니라면, 대통령은 2선으로 후퇴하고 국회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플랜B를 가동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대연정 형식의 협치가 불가피하다. 그러자면 야당이 신뢰하고 대화할 수 있는 새누리당 대표가 필요하다. 신뢰를 상실한 이정현 대표는 물러나야 한다. 맹목적 충성으로 박 대통령을 이렇게까지 만든 책임을 묻자면 앞에서 몇 손가락에 들어간다는 것이 세상의 평가다. 이 대표가 버티면 버틸수록 탄핵의 파국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박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결단해야 한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배달될 일요일 아침보다 이 대표의 사퇴가 빨랐으면 한다.


박성민정치컨설팅 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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