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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세 옥죄기 규제만으론 어렵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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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과열 양상에 정부 ‘정밀타격’ 대책...공급 확대, 강남권 수요 분산책 시급

뜨거운 감자 강남 재건축

강남 불패 신화는 역시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이번엔 재건축이란 날개까지 달았다. 소비·투자·수출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부동산 시장만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특히 서울 강남권 집값 상승세가 뚜렷하다. 강남발(發) 부동산 과열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선별적·단계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나마 경제를 지탱하던 건설경기까지 식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강남권에 대한 초과 수요 문제를 풀지 않고선 과열 논란을 잠재우기 어려울 거란 분석이다. 더구나 재건축 분양 시동을 건 개포에 이어 압구정·반포·잠실 등에서 재건축 사업이 줄을 이을 예정이다. ‘뜨거운 감자’ 강남 재건축 시장을 자세히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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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재건축 시장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시장 온도가 ‘온기’ ‘열기’를 넘어 ‘과열’ 수준으로 상승했다. 소비·투자·수출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부동산 시장만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특히 서울 강남권만 두드러지게 끓고 있다. 경기 전반과 다른 양상이다 보니 ‘이상 과열’이란 말까지 나온다. 저성장에 속앓이를 하는 정부의 셈법은 더욱 복잡했다. 부동산 시장의 열기를 식혀야 하는데 자칫 싸늘해진 경기에 찬물을 더 끼얹는 꼴이 될까 고심을 거듭했다. 갈팔질팡하던 정부는 10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 등이 참가한 경제현안 점검회의에서 부동산 대책의 가닥을 잡았다. 유 부총리는 ‘강남발(發) 부동산 과열’에 ‘선별적·단계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 “11월 3일 대책을 확정,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오리무중이던 부동산 대책 관련 원칙과 스케줄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총 부채상환비율(DTI) 조정 같은 전방위적 수단을 동원하는 건 자제하는 대신 일부 지역만 ‘정밀타격’하는 대응책을 가동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강남·서초구 집값 상승률 고공행진

강남권 재건축이 10년 만에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주택시장의 전면에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 집값이 가장 많이 올라 ‘집값 폭등기’라고 불리고 ‘버블(거품)’ 논란을 낳았던 2006년 이후 처음이다. 2006년 아파트값이 전국 13.9%, 수도권 24.2%, 서울 23.5% 올랐다. 강남권 상승률은 25.3%(송파)~28.2%(강남)였다. 당시 집값 상승세는 들불처럼 번져 지역적으로 상승률 편차가 크지 않았다. 강남권은 평균보다 조금 높은 상승률을 보이며 시장을 주도했다.

올해 강남권 상승세는 2006년에 크게 못 미치지만 다른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올 들어 9월까지 전국적으로 아파트값이 0.3% 올랐고 수도권이 1.0%, 서울 1.8%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강남권 가운데 강남·서초구 상승률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강남 4.1%, 서초 2.6%다. 송파구는 1.1%에 그친다. 올 들어 9월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9%다. 강남·서초구 아파트값 상승률은 물가상승률은 물론 서울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올해 강남권 집값 상승세가 더 크게 피부에 와 닿는 이유다.

강남권 아파트값 상승세는 재건축 단지가 주도하고 있다. 강남권 아파트는 대부분 1980년대 강남 개발 때 지어져 상당수가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재건축 단지 상승세는 강남권 평균 오름세를 웃도는 것이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분양시장 열기는 더욱 뜨겁다. 분양가가 비싸고 중도금 대출 보증이 안돼 중도금을 직접 마련해야 하는데도 청약경쟁률이 하늘을 찌른다. 가계부채 증가세 억제를 위해 9억원이 넘는 분양가에 대한 중도금 대출 보증을 제한한 정부 대책이 무색할 정도다. 10월 초 분양된 서울 잠원동 아크로리버뷰(옛 신반포5차)는 올 들어 수도권 최고인 평균 306대 1의 1순위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별공급을 제외하고 모집가구수가 28가구로 많지 않았지만 8500여명이 신청했다. 이 아파트는 분양가가 3.3㎡당 4194만원으로 모든 가구가 9억원이 넘었는데도 청약자들은 중도금 대출 제한에 개의치 않았다.

이 아파트뿐만 아니라 올 들어 강남권에 분양된 아파트는 모두 재건축 단지로 분양가가 3.3㎡당 최저 3700만원 이상이었지만 최저 평균 경쟁률이 34대 1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강남구 개포동 저층 첫 재건축 단지로 분양가가 3.3㎡당 4100여만원이었고 9억원 초과 분양가 중도금 대출 제한 첫 적용 대상이었던 디에이치 아너힐즈(옛 주공3단지)도 10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고분양가에도 재건축 청약경쟁률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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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 재건축 단지 분양가 상승세도 거침 없다. 개포동 주공3단지 분양가는 5개월 전인 3월 분양된 2단지 래미안 블레스티지보다 3.3㎡당 300만원 넘게 뛰었다. 올 들어 3.3㎡당 4000만원대가 일반화됐다. 올 들어 강남권에 분양된 5개 재건축 단지 중 3곳의 3.3㎡당 평균 분양가가 4000만원을 넘겼다. 최고가는 1월 분양된 잠원동 신반포자이(옛 반포한양) 4290만원이다.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옛 주공3단지)는 4500만원 넘게 추진하다 분양 승인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후 4137만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올해 강남권 재건축 시장은 비싼 분양가에도 높은 청약경쟁률을 보인 청약시장이 기폭제가 돼 기존 매매시장도 달아오르면서 분양시장·매매시장 모두 열기가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 열기가 뜨거운 건 일반적인 경제 흐름과 마찬가지로 돈이 되기 때문에 돈이 몰려서다. 수익성은 물론 환금성도 좋다. 그래서 ‘고분양가’란 꼬리표에도 청약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앞서 분양된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분양가보다 훨씬 많이 오른 학습효과 때문이다. 분양 초기 미분양 몸살을 앓았던 반포동 주공2,3단지 재건축 단지인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자이는 현재 강남을 대표하는 단지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2008년 분양 당시 분양가가 3.3㎡당 3000만원 선이었는데 지금 시세는 3.3㎡당 4000만원 대다. 8년 새 30~40% 올랐다. 이 기간 서초구 아파트 값은 4%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상승률이 해당 구 평균의 10배 수준이나 된다. 2013년 말 3.3㎡당 3700만원 선에 나온 반포동 신반포 1차 재건축 단지인 아크로리버파크는 8월부터 입주를 시작했고 현재 3.3㎡당 5000만원이 넘는다. 3년 새 40%가량 급등했다. 12억원 선인 전용 84㎡형이 18억원으로 치솟았다.

아직 입주하기 전 단지들엔 적지 않은 웃돈(프리미엄)이 붙었다. 2014년 9월 분양돼 올해 말 입주 예정인 서초동 우성3차 재건축 단지인 래미안서초에스티지 전용 83㎡의 웃돈은 1억~2억원 선이다. 분양가는 10억원대였다. 지난해 10월 분양된 인근 우성2차 재건축 단지인 래미안서초에스티지 S의 같은 주택형 웃돈은 5000만~1억원이다. 이러다 보니 분양시장에 분양권 전매차익을 노린 투자수요가 크게 늘었다. 당첨만 되면 수천만원의 웃돈을 기대할 수 있어 단타 전매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1월 분양된 신반포자이는 2월 전매가 가능해지자마자 한달 간 분양물량(153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71가구의 분양권 명의가 바뀌었다.

미분양에도 결국 급등, 학습효과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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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공사에 들어가기 전 사업추진 단계인 기존 단지의 투자성도 좋다. 분양 이전 재건축 단지는 시장 상황, 정부 규제 등의 영향에 따라 단타 주식시장과 같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금융위기나 강도 높은 정부 규제를 맞아 가격이 급락하기도 하지만 요즘 재건축 시장 투자성은 어느 때보다 좋아졌다. 2014년 이후 집값이 오름세를 타고 있고 있는데다, 그 동안 정부의 대대적인 재건축 규제 완화로 사업성이 좋아졌다. 올 들어서는 고분양가에도 분양 성공으로 재건축 후 몸값 기대감이 크게 오르면서 ‘황금알’을 낳을 정도가 됐다.

올해 재건축 시장에서 가장 ‘핫’한 지역인 개포동 1단지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지난 10년 간 수익률이 주택형에 따라 최고 10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값이 33% 올랐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6%였다. 최근 조합원 분양신청을 받고 분양을 준비 중인 이 아파트의 10년 전 가격과 새로 배정받는 새 아파트 분양가를 비교하면 수익률이 나온다. 10년 전 전용 50㎡의 시세가 7억8000만원이었다. 재건축조합의 조합원 분양계획에 따르면 이 아파트로 추가분담금 없이 오히려 1100만원을 환급 받고 새 아파트 전용 84㎡를 받을 수 있다. 전용 84㎡ 일반분양분 분양가가 3.3㎡당 4100만원으로 가구당 13억5300만원이다. 7억8000만원 짜리가 10년 새 13억5300만원짜리 아파트로 탈바꿈하면서 덤으로 1100만원까지 현금을 손에 쥔다. 수익률로 따지면 74%에 달한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사업승인 계획을 세울 때 일반분양가를 3.3㎡당 3600만원으로 잡았다. 올 들어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비싼 분양가에도 분양이 성공하자 일반분양가를 500만원 인상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일반분양가 인상으로 일반분양 수입이 350억원가량 늘었고 조합원당 평균 700만원 정도의 추가분담금이 줄어든다. 하지만 이보단 몸값 상승 이득이 훨씬 더 많다. 전용 84㎡ 일반분양가가 1억6000만원 오르기 때문이다. 재건축 아파트는 일반분양가를 기준으로 시세가 형성된다. 이 아파트가 이 가격으로 분양돼 입주할 때 더 오른다면 기존 조합원의 수익률은 더욱 올라가게 된다. J&K도시정비 백준 사장은 “고분양가 분양 성공이 올해 재건축 시장을 달군 불쏘시개”라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들의 분양 성공으로 투자성이 눈에 보이자 재건축 투자수요가 늘며 기존 재건축 단지 가격 상승세가 확산됐다. 주공2,3단지 재건축단지가 연이어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한 개포동은 올 들어 시세가 평균 20%나 뛰었다. 연초 7억에 못 미치던 개포동 주공4단지 전용 36㎡는 현재 9억원을 앞두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전용 76㎡는 같은 기간 12억원에서 15억원으로 3억원 올랐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 센터장은 “강남권 재건축 단지 몸값이 금융위기 전 집값 급등기 때의 전성기를 넘어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강남권 규제에도 강남권 투자열풍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집값이 크게 오를 때부터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정조준한 규제가 잇따랐지만 지금도 강남권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강남권은 2000년대 초반 3대 주택시장 규제 제도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적용받았다. 청약자격과 전매제한을 강화하고 재건축 조합원 명의변경을 제한한 투기과열지구, 양도세가 중과되는 투기지역, 자금 출처 등을 밝혀야 하는 주택 거래신고지역(지난해 7월 폐지)의 규제에 동시에 묶여 사면초가에 몰렸다. 투기과열지구는 2002년 9월에 지정돼 2011년 12월까지, 투기지역은 2003년부터 2012년 5월까지, 주택거래신고지역은 2004년 4월부터 2012년 5월까지였다. 여기다 내년 말까지 유보된 재건축부담금, 소형주택의무비율, 용적률(사업 부지 면적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 제한 등 각종 재건축 억제책이 강남권을 옥죄었다.

이들 규제가 금융위기 이후 수도권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완화된 후 강남권 재건축 시장은 고공행진했다. 때문에 이번 규제에도 기가 다소 꺾이더라도 시장이 고꾸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강남권 맷집은 ‘초과 수요’에서 나온다. 교통·교육·문화·편의시설 등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주거 입지여건을 갖춘 강남권에는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부족하다. 기존 거주 가구수보다 집이 부족하다. 2014년 기준으로 강남권 주택보급률이 96%로 서울 평균(97.9%)보다 낮다. 강남권에 집을 갖고 있는 사람 가운데 새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다. 집이 낡아서다. 서울 아파트 10가구 중 4가구가 지은 지 20년이 지났는데 강남권 비율은 두 집 중 하나꼴인 49.4%다. 강남구는 56.9%에 달한다. 여기다 강남권으로 새로 들어오려는 수요도 많다.

개포 재건축 수익률 10년 새 74%

강남권엔 빈 땅이 거의 없어 재건축 말고는 새 아파트를 공급할 길이 없다. 재건축 단지에 사람·돈이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다 강남권 재건축 ‘잠룡’들이 깨어난다. 분양 시동을 제대로 건개포에 이어 압구정·반포·잠실 등에서 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고 재건축 대장주로 불리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도 꿈틀대고 있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수급이 해결되지 않는 한 강남권 주택시장이 정부 규제 등으로 흔들릴 수는 있어도 부러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위기는 주택시장 내부에서 올 수 있다. 올해부터 강남권 재건축 분양이 줄을 이으면서 재건축 시장에 새 아파트 공급이 크게 늘어난다. 2018년 부활 예정인 재건축부담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을 서두르면서 재건축 분양 봇물을 이룰 수 있다. 분양 봇물 2~3년 후에는 자연히 입주 물량이 쏟아지게 된다. 강남권 주택 수요를 분산·흡수할 수 있는 위례신도시 등도 주변에 개발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권의 뛰어난 입지여건, 첨단 새 아파트의 매력을 감안하면 강남권 재건축 메리트가 분명히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낙관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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