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4일 미국 워싱턴DC 멜론 오디토리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한·미 우호의 밤’ 행사에서 한국 합창단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뒤론 한 편의 코미디가 있었다. 당초 합창은 버지니아주 파월 초등학교 학생들 몫이었다. 한국어 몰입수업을 채택하고 있는 학교다. 한복·신발도 나랏돈으로 사왔다. 그런데 행사 직전 돌연 지시가 내려왔다. “‘위’에서 세 곡 중 한 곡은 절대로 팝송 ‘해피(Happy)’를 넣으란다. 안 되면 다른 데로 바꿔라.” 결국 ‘고향의 봄’을 준비하던 파월 초등학교 학생들은 손을 들고 말았다. 급거 한국에서 전문 합창단이 파견됐다. 예산 낭비도 문제거니와 땀 흘려 준비했던 파월 초등학교 학생들은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최순실·차은택 스캔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당시 생각이 떠올라 ‘위’가 어디였는지 캐물었다. “청와대”란다. 몰상식한 결정 뒤에 아른거리는 그들의 그림자를 본다. 그놈의 ‘해피’가 뭐라고-.
미 대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한 지인은 “도대체 미친 놈과 나쁜 년 중 누구를 골라야 하냐”며 원색적 표현을 썼다. 트럼프에 대해선 품격을 논하길 포기했다. 근데 클린턴도 별반 차이 없다. 끝까지 서로에 대한 비방뿐이다. 정치언론의 행태도, 흑백·성별로 뭉쳐 싸우는 것도 후진적이다. 하지만 미국의 강점이 뭔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궤도 수정을 하는 자정 능력, 그리고 “난 우리 지도자가 뭘 하고 있고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투명함에 대한 믿음 아니겠는가.
우리 사정은 참담하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외치’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한다. 어림없는 소리다. ‘천하’를 얻은 미국의 새 대통령이 도덕적 권위, 국정 장악력 모두 상실한 대통령과 모든 걸 터 놓고 중대한 미래전략을 짤 것 같나. 또 우리가 그토록 “도덕성 좀 갖춰라”고 호통을 쳤던 일본 총리와는 무슨 낯으로 얼굴을 맞댈 것인가.
어찌 됐든 우리에겐 다음 대선까지 결코 잊어선 안 될 숙제가 주어졌다. 구중궁궐 청와대 본관 폐쇄, 그리고 ‘국민에게 질문권 보장’이란 두 가지를 약속하지 않는 후보는 절대 뽑지 말자. 이제 그 정도의 자정 능력은 우리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엔 은폐란 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왜일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 기자회견 횟수는 총 158회, 연평균 20회다. 전임 조지 W 부시는 210회(연평균 26회)였다. 기자들이 지칠 때까지 질문을 받는다. 박 대통령은 고작 5회(연평균 1.25회)에다 질문도 거의 받지 않는다. 이 20배의 불통이 결국 최순실을 낳았다. 게다가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이유를 대며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의 의무조차 하지 않았다.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은 닉슨도 빌 클린턴도 그러진 않았다.
“질문을 허(許)하라.” 이제 이 말은 요구가 아닌 시대의 명령이 됐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