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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 여파 주시하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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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도쿄총국장

오영환
도쿄총국장

올 들어 일본 외무성의 화두 중 하나가 동맹 관리라고 한다. 8일의 미국 대선이 미·일 동맹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막판 상승세는 촉각을 세우게 하는 요소일 게다. 트럼프는 일본의 안보 무임승차를 되뇌면서 동맹의 구조조정을 예고해 왔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도 트럼프 현상의 원점인 신고립주의가 꿈틀거릴 게 분명하다. 두 후보는 버락 오바마·아베 신조의 미·일 정부가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반대한다. TPP에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중국 중심 무역질서 견제 전략도 들어 있다. 아베 내각이 지난주 TPP 비준 절차를 시작한 것은 두 후보에 대한 압박으로 읽힌다.

일본은 미·일 동맹에 더해 한·일 관계 관리에도 나선 것 같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한국의 국정 혼란이 양국 관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하나는 지난해의 한·일 당국 간 위안부 합의다. 합의문에서 한국 측이 노력하기로 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문제는 큰 관심사다. 한국에서 여론의 향배가 중시되는 만큼 진척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더 나아가 한국 야당이 한·일 합의 자체를 부정하려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난주 서울에서의 한일·일한의원연맹 합동총회에 참석한 일부 일본 의원은 한국 야당 의원들의 강경 태도에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위안부 합의의 성실한 이행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예방주사의 성격이 강하다.

다른 하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문제다. 양국 외교·국방 당국은 지난주 첫 실무회의를 했다. 2012년 체결 직전까지 갔던 만큼 추가 협의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협정은 북한 핵·미사일의 고도화와 실체적 위협을 고려하면 양국 모두에 이익이다. 일본의 정찰위성·잠수함 정보는 우리에게 긴요하다. 안보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속도 조절에 나설 이유가 없는 사안이다. 일본은 이 역시 정치가 안보를 지배할지 모른다고 보는 듯하다. 일본이 의장국인 한·중·일 정상회의가 다음달 열릴지도 초점이 되고 있다. 일본은 개최 일정에 유연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첫 방일이 이뤄질지는 미묘한 상황이다. 정치 공백이 길어지면 외국 방문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1년 11월 방미 길에 도쿄에서 30시간 체류했을 뿐 집권기간에 한 번도 공식 방일하지 않은 전철이 되풀이될 것인가. 일본은 미국 대선만큼이나 한국 정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요체는 우리의 외정(外政)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다. 내정의 여파는 불가피하지만 외교는 돌아가야 한다. 당국이 여론 뒤에 숨거나 정치 역학만 살펴선 곤란하다. 정부 간 합의는 상황 논리에 관계없이 유지하고, 안보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일은 추진하는 게 순리다. 다수 정파나 정권의 이익이 아닌 국가 이익, 국격(國格)이 고려의 원점이 돼야 한다. 어차피 외교도 실패는 선전되고 성공담은 감춰지는 세계가 아니던가.

오영환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