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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통일」집착포기 개방정책 추구"|김일성이후의 북한(서대연<하와이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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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1월의 김일성사망설은 사실무근으로 밝혀 졌으나 이를 계기로 우리는 「김일성이 없는 북한」을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김일성자신도 나이를 생각, 후계자를 내세우고 80년대 후반기에는 정치일선에서 점차 물러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74세의 고령이라 하지만 그는 이승만박사가 대통령으로 취임할때 나이보다 한밖에 더 많지 않다. 원한다면 그는 아직도 정치능력을 넉넉히 발휘하고도 남을 권력도 있고 추종도 받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도 불원 다른 공산국가 지도자들같이 조물주를 찾아갈 때가 올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북한정치에는 어떤변화가 올것인가. 가상적인 것이지만 세가지 정치문제를 생각해보자.

<당의통제도 완화>
북한의 현 정세로 보아서는 지난번에 유포되었던 김일성의 암살이나 군부쿠데타같은 것은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의 권력계승 문제는 김일성의 자연사를 전제로 해야하며 지금 후계자로 만들고 있는 김정일이 정권을 잡는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견해는 몇가지 중요한 북한정치 형태에 기인한다.
즉 누가 집권을 하든지 지난 40여년동안 김일성의 통치실적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서는 정권을 유지하지 못한다. 김일성의 빨치산 경력이나 「주체사상」, 그가 키운 노동당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북한의 외정자가 될수 없다.
품문에 많이 오르는 오극렬, 오진우 모두 빨치산의 배경을 갖고 있다. 전정무원총리인 강성산, 부주석 임춘추·박성철등도 비슷하다.
오랫동안 총리로 있다가 부주석이 된 이종옥은 빨치산은 아니지만 만주간도 용정의 동광중학교 졸업생이고 오랫동안 김일성이 키워온 사람이다. 이들 모두 김일성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일성의 가장 편리한 후계자는 김정일일 수밖에 없다.
부분적으로는 김일성의 실책을 교정하고 1인독재정치에서 권력을 분산하여 집단지도형태로 나갈지도 모른다.
김정일은 노동당의 총비서로 당책을 맡고 정부는 말 잘듣는 인물에 맡기고, 박성철이나 임춘추같은 사람을 주석으로 추대하고, 군부는 오극렬이 장악하는 식으로 이끌어 나갈수 있다고 본다.
김일성이 간뒤에는 그 후계세력들이 노동당의 통제를 중·소정도로 낮추고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는등 국제적으로도 개방의 방향으로 나가게될지도 모른다.

<남북관계 재평가>
김일성시대의 남북 관계는 상호적대 충돌관계라고 할 수 있다. 김의 궁극적인 목적은 적화통일에 있고 6·25로부터 최근의 랭군 테러사건까지 일률적으로 남한정권을 전복하고 노동당 깃발아래 통일하자는 것이다.
좀더 타협적으로 보였던 7·4공동성명이나 고려연방제, 그리고 최근의 적십자·경제·국회회담도 전부 적화통일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예를 들면 7·4공동성명에 발표된 통일 3대원칙을 설명하면서 김일성은, 첫째로 외세에 의존하지 말자는 것은 주한미군을 쫓아내자는 것이고, 둘째로 평화적으로 하자는 것은 한국의 군사현대화를 중지시키자는 것이며, 세째로 민족이 대단결하자는 것은 한국의 반정부세력을 북한이 흡수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북한의 강경한 태도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수일성에 기인한다. 김일성은 한국은 아직도 미제의 작전하에 있다고 상정, 항일투쟁과 같이 반미투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6·25를 통해 무력으로 해방시키거나, 또 박정희대통령이나 전두환대통령을 암살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법을 취했다.
김일성이 없는 북한의 위정자들은 남북관계를 재평가하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즉 지금 김일성이 고집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무력통일이나 적화통일의 사명감은 약화되리라 본다.새 지도자들은 지금 김일성이 쓰지않는 정치용어, 즉 평화공존같은 말을 쓰고 좀더 남북한의 현실을 사실 그대로 파악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적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기면 무력통일에 필요한 군사나 군비경쟁보다 경제적 경정, 또는 사회·문화면에서 점진적인 긴장완화 목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말란 법도 없다.
그렇게되면 교차승인이나 유엔동시가입등도 재론될 여지가 생긴다. 따지고 보면 교차승인은 한국보다는 북한에 훨씬 유익한 개념이다.
한국이 중공이나 소련과 국교를 열었을 경우 얻을수 있는 것이란 경제적·기술적인것보다는 군사적이나 안보면에서 북한의 양대 인접국가가 북한의 남침이나 테러를 견제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데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이 만약 일본이나 미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열었을때 경제면이나 기술면에서 커다란 혜택을 받을수 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교차승인이 함축하는 상호 국가승인적 의미다.
그럴경우 남북의 경제교류·정치협상·문화예술교류관계가 급변할 것이다.
유엔관계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유엔의 특별기구에 남·북한이 동시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유엔자체에는 북한의 반대로 동시가입이 안되고 있다. 남북한이 둘다 들어갈 수 있다면 표도 두개가 될뿐아니라 남북이 서로 상호인정할 때 통일의 길도 더 단축될 수도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 세대의 북한지도자들은 강경한 정책을 쓰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새 세대에는 김일성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조국해방의 집착이 없고 문명국가로 발전하러는 욕망이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한국에 테러단을 보내 정계요인을 살해한다든가 남한사회를 교란시킨다든가 하는 것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북한이 하루 이틀 사이에 급변한다는 것은 아니다.
남북이 모두 각각 국호·국기·국가등 나름대로의 이념과 방식을 고집한다고 보지만 지금같은 상호 적대 관계는 보다 타협적 관계로 변한다고 본다. 북한도 지금같은 폐쇄사회에서 개방된 사회가 되고, 위정자들이 사회여론을 무시 못할 때가 결국은 오고야 말것이다.

<제3세계엔 한계>
지난번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는 중공이 금메달을 가강 많이 땄을뿐 아니라 폐회식에서 한국의 호돌이와 중공의 팬더곰이 1990년에 배경에서 재회를 약속했다. 또 중공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도 참가한다고 했다.
북한은 아시안게임도 불참했을뿐 아니라 제3국가들을 동원하여 서울올림픽을 불참하도록 꾀하거나 아니면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주최를 꾀하고 있다.
북한입장에서 보면 중공은 수정주의적으로 나가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의 일본·미국등과의 자본주의적 거래가 북한으로 하여금 친소로 기울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중공의 한 중간층 관료는 김정일이 친중공이지 친소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다.
30년이 가까운 중소분쟁에서 북한은 친중공도 해봤고 친소도 해봤다.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을 조선민족의 대부라고도 했고 중공의 모택동을 수령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리고 이런데 시달리다가 주체사상을 내걸고 제3세계로 진출도 해봤다.
그러나 북한의 제3세계 외교란 김일성을 제3세계 비동맹국가의 지도자로 추대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같다.
김일성이 없어지면 북한의 주변국가와의 외교도 많이 변할 것이다. 북한도 그들의 제3세계 외교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고 아프리카에 주체사상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보다 자본주의 국가라도 선진국에 학생을 보내 경제발전을 연구하고 기술도임을 꾀하는 것이 국가발전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북한이 일본·미국등과 국교를 열지 않고 현상유지하는한 북한은 친소적으로 갈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즉 중공이 경제나 기술면에서 아직 선진국가가 되지 못했고 중공 자신이 일본이나 미국에서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는 상태다. 반면 소련은 사상적으로 동조하는 사희주의 국가일뿐 아니라 자본파 기술을 제공할수 있는 선진국가다.
북한으로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중공의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한국과의 관계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미국·일본·홍콩을 통해 간접교역을 하고 있다.
한국과 중공이 밀접해지면 북한은 소련쪽으로 기울수밖에 없다. 물론 소련에 키우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군비때문이다.
앞으로 북한은 소련의 태평양진출을 돕는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86년 한햇동안의 북한동향을 보더라도 북한의 친소경향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의 소련은 태평양진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따라 북한도 태평양인접국가, 특히 동남아나 남아시아국가들과의 관계를 좀더 확고하게 개선하는 것을 급선무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남북관계는 다시 해방직후같이 미국과 소련이 대립되는데 앞장을 서야될지 모른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독립이나 통일문제보다 미소양국의 태평양을 무대로 한 경잭에 일원으로 대립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일성시대의 북한은 건국·건당·적화통일등을 목적으로 인민을 조직·훈련·동원하는 일에 몰두하다 세계사회발전에 뒤떨어진 나라로 되고 말았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북한이 이러한 궁지에서 벗어나 선진대열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가 세워 놓은 전통을 존중하되 「재평가」해야 하고 남북관계도 적화통일보다는 진겅한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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