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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길면 봄은 더 따뜻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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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추기경께서 이런 시를 쓰신적이 있읍니다.
『얼어 붙은 자연엔 봄의 입김이 서려옵니다.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엔 언제 봄이 옵니까?』「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제목의 이 글은 유신시대 직전이니까 벌써 15년전인데, 새해엔 추기경이 기다리는 봄이 올것 같습니까.
▲내가 그 기도에서 말하고자 한것은 자연의 봄은 제물에 오고 가지만 인간세상의 봄, 마음의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고 그 실감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인간자신의 회개나 변화없이 마음의 봄, 인간세상의 봄을 맞이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마음의 봄이 오고 있는 것을 느끼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거듭나서 새롭게 공동체를 세워보겠노라고 힘을 합치고 마음을 새로이 해서, 그래서 찾아오는 봄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인도의 어떤 성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다 내형제로 보일때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 역시 우리의 이읏을 형제로 사람하고 그렇게 껴안을수 있을때 비로소 마음의 봄, 우리공동체의 봄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생각하는 봄은 어떤 계절입니까? 봄의 조건이랄까, 복음적인 봄 말입니다.
▲교회가 생각하는 봄, 복음적인 봄은 인간이 본성에 따라 자유를 누리고, 공포와 원한이 없고, 희망의 빛을 볼수있는 상태이겠지요.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억압과 짓밟힘 없고, 쫓고 좇김이 없으며, 미움과 갈등, 분열과 적대가 없는 사회, 곧 민주화된 사회를 일단 연상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무기를 버리어 농기구를 만들고 독사와 어린이가 같이 노는 친교의 사회를 그려놓은 것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그렇게 복음적으로 완벽한 봄의 세계는 이 지상에는 없겠지요.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반드시 천상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마침내 이 기상에서도 건설해야 될 사회이기도 한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상에서 천상의 나라를 건설하기 의해서 찾아 나서는 나그네길이라고 할수 있읍니다.

<「복음적 봄」은 아직…>
-최근 정치인들이 추기경을 방문하는 일이 잦습니다. 여당권 보다는 야당지도자들이 많은데 무슨 밀담이라도 나누십니까? 추운 겨울이 빨리 지나가고 따뜻한 새봄을 맞아들이는 신책이라도 있읍니까.
▲나 자신으로서는 송구하고 힘에 겹게 생각되는 일이지만 야당 지도자들을 비롯해 여권 인사들의 방문을 받기도 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열려 있고 나 역시 폐쇄적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만나뵙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나라 걱정을 진하게 하고 자신들의 어깨에 지워진 부담때문에 힘겨워하고 고달파합니다. 나는 다만 들어드리는 것 뿐입니다. 더러 구속자 문제등 현안문제나 상계동 철거민 문제같은 것에 대해서도 말을 나눌 때가 있지만 밀담이랄 것까지는 없읍니다. 내야 무슨 현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진심으로 나라일을 걱정하고 그분들의 고뇌를 같이 나누어 드리는 것이 고삭입니다. 생각하기로는 만나 본 분들의 그 진솔한 대도에 비추어 볼때 여권이건, 야권이건 정치하시는 분들이 직접 서로 사심없이 흉금을 터놓고 말씀을 나누면 민주화에 보다 큰 진전이 있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추기경께서 지난해(86년) 가을 「로마발언」에서 여야정치지도자들의 야심노기를 주장하셨습니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읍니다만 사실『마음을 비운다』는 것과 『정치를 한다』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얘기입니다. 정치는 입산수도자가 하는 일은 아닌데, 추기경께선 정치인들이 마음 비우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이른바 나의「로마발언」문제로 여러 방면으로부터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가 여야지도자들에게 『마음을 비울것』『집권욕을 버릴것』을 권고한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치가 정상적으로 되어가는 현실에서라면 정권욕은 다만 「선의의 경쟁적인 봉사의욕」인 것이죠. 또 교회용어로 말하자면 공권력인 그 정권도 「하느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속하는것」으로 정당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는 정권을 둘러싸고 정통성시비를 비롯해서 진정한 민주화문제는 제쳐 놓은채 정치적 욕구만을 관철해내기 위해 사생결단을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험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선 서로 이성과 여유를 회복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따라서 나의 로마발언은 나라를 걱정하는 한사람으로서 나의 절실한 바람이었고, 나름대로는 생산적인 역사의 기틀을 닦아주었으면 하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내 발언이 극악스러운 충격을 주었다면 그것은 내 본의가 아니였읍니다.
-추기경께서 생각하시는 정치인의이상적 모델은 어떤 것입니까. 거명을 하셔도 좋고, 조건을 제시하셔도 좋습니다. 공자는 자신에게 정치를 맡겨주면 1년은 어지간히 다스리고 3년이면 육성이라고 했읍니다만….
▲정치인으로서의 이상적인 모델도 어떤 특정인의 경우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원리적으로 정치인은 「모든 사람의 자유와 책임의식에 바탕을 둔 도덕적인 힘에 의해 인간과 사회의 자기완성이라는 공동선을 향해 수고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도덕적인 힘이 아니라 기계적이고 폭군적인 힘에 의거하는 정치인은 반드시 패망하고 맙니다.
공자께서도 1년이나 3년의 시간적 여건을 거론했다기보다 늘「정치에는 정의로운 명분이 있어야 한다」(필야정명호)라고 했으며, 어디까지나 덕치를 해야한다고 말씀했지요.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놓고 어느똑이 더 자유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읍니다. 그러나 추기경께선 대통령중심제의 타당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우연이시겠지만 신민당의 입장과 같아지셨는데 그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제도는 인간위한 것>
▲물론 대통령중심제도, 내각책임제도 다 자유민주주의 제도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에 와서는 공개적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는 공화팽의 유신체제가 대통령간선제를 썼던 사실을 모두가 잘알고 있읍니다. 현정권도 개헌태도를 버리고 「진정한 민주화」를 다짐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 직접적인 참정의 기회와 정권의 정통성을 한꺼번에 보장해 줄수 있는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고 진정 민주화가 될수 있고 또 정부선택권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국민에게 주어진다면 권력구조 문제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되거나 첨예화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가톨릭에서 교회내의 전문가들을 통해 개헌안의 모범담안을 하나 내놓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헌법에서는 권력구조형태가 중요한 것인데 가톨릭교회에서는「요한」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안에 나타나 있듯이 「정부형태는 그 사회와 시대에 따라 변할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삼권분립이 인간본성의 요구에 합치되는 형태」라고 봅니다.
그리고 나서도 결국 「제도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는 원칙과 헌법상의 그 어떠한 제한권도이 인간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는 없다는 조문이 명시될뿐 아니라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때때로 계엄령하의 정치입법이 국민의 기본권,특히 언론자유같은 것을 침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들이 가톨릭교회안의 공식 견해이며 주장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정당은 아니므로 모범적인 개헌안을 마련해 보는 것은 좀 뭣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본권문제, 생존권문제, 사사정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국내에서 발됴한 교서등 교회문서를 정리해도 훌륭한 하나의 모범답안이 나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학생들의 시위는 얼마전까지도 상상할수 없었던 양상을 보여주고 있읍니다. 행동도 그렇지만 구호도 놀랍습니다. 어떻게 보면 민주화를 외치는 세력과 폭력세력이 혼재해 있는것 같으나 추기경께서 민주화는 하되 파괴적인 시위나 좌경구호는 안된다는 분명한 말씀을 하셔야 한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읍니다.
▲민주화를 외치는 세력과 폭력세력은 반민주적 정치가 오래 지속된 상황에서는 구분하기 힘든 성격의 것입니다. 가톨릭 신앙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필리핀과 같은 섬나라에서도 「마르코스」의 독재에 반발하여 신인민군이라는 무장 게릴라 집단까지 자생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젊은이들의 좌익화나 폭력세력화를 방지하는 길은 오직 민주화와 사회정의의 실현밖에 없읍니다.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한때 학생들의 데모가 격렬했다가 지금은 사라졌는데 그 사회에는 자기치유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명분이나 이슈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과격성도 일시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려고 하시는 분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사회정의의 구현이나 민주적 요구의 정책적 반영의 민주적 틀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과격성이 가라앉게 됩니다. 젊은 세대와 양심적 시민대중으로부터 「독재」로 지적받는 우리사회의 체제는 경우가 다릅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과격성이나 격렬함이 정당시 될수도 없읍니다. 그래서 나는 화염병과 돌을 놓고 그 자리에서 오직 민주화를 외칠때 그 주장의 정당성이 더욱 뚜렷이 확인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을 너무쉽게 용공좌경으로 매도하여 버리는것 또한 자제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모든 문제들이 남김없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점에선 몇년전의 상황과 다른데, 이제부터는 문제의 지적보다는 수습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그대로 방치만 되면 국가존망을 걱정해야할 상황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추기경께선 어떤의견을 갖고계십니까.

<도덕적구심 찾아야>
▲문제의 지적보다 수습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옳으신 지적입니다.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호희 구원에 긴요할 경우에는 교회와 정치질서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현대세계 사목헌장」이 가리키는 실천원리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건강한 중간집단이나 기능이 그 부분을 광범하게, 그리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하고, 또 정치권력이 이러한 노력을 탄압하고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양심세력이 발언권의 영역을 넓혀 나갈수 있도록 오히려 도와주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도덕적구심을 갖지 못하는 국가사회의 운명은 위대롭게 될것입니다.
-요즘 어느 외국잡지에서 「마이클·노버크」라는 사람과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더니 이런 말이 있었읍니다.『로마교회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뭔가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사회정의의 원칙을 가르쳐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방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로마교회는 경제의 실제도 가르쳐주어야 한다』「노배크」는 스랜퍼드대 교수도 지냈고 지금은 미국평신도회 부회장입니다. 우리나라 가톨릭도 정의와 평화를 주장하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제(practice)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가톨릭교희가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사회정의만 가르치지말고 경제성장을 외한 실제적 조건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말씀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빵 자체가 아니라, 빵방을 어떻게 나누어 먹느냐하는 문제입니다. 빵이 절대량이 부족한것이 아니라 나누어 먹는 사람이 부족한 것입니다.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접의 문제입니다. 이럴수록 대다수 근로자들의 혹심한 저임금 수준을 향상시겨야 하고, 일방적인 빈민촌 철거같은 것을 하지 않아야될것입니다.
-지난해(86년)엔 로마나들이를 몇번 하셨는데 교황을 뵙는 자리에선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십니까. 교황께선 우리나라, 우리 국민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계십니까.

<교황이 알고있는 한국>
▲로마교황께서는 우리나라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게 갖고 있는 지식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지만 인권의 문제가 많은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점을 걱정하시지요.
반면 정부가 강조하는 국가안보의 현실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고 이해를 하십니다. 그렇더라도 인간 존엄성을 지킬 인간 기본권은 절대적으로 함양돼야 하며 공산주의와 싸우는데도 유리하다는 견해지요.
교황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관심이 아주 강합니다. 인간은 어떤 의미로든 정치·경제의 도구화가 돼서는 안된다는게 그분의 신념이지요.
교황은 최근에 이런 말씀도 하셔요. 『한국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이 왜그렇게도 나를 만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좀그렇게 안해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비치셨읍니다.
-교황께선 교회의 사회적인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80년여름 브라질을 방문하셨을때는 독재정권에 항의하는「헬더카마라」대주교를 비릇해 많은 성직자들이 모인자리에서 『우리들은 정치나 경제의 전문가가 아니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그무렵 타임지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최근엔 필리핀사태때에도 「하이메·신」추기경에게 정치에 너무 깊이 관여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는 외신도 있었읍니다만….
▲성서에 있는 복음의 정신이 근본적으로 해방의 정신입니다. 또 교회의 사회 참여는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의 공식 입장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되도록 원리제시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 현실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사회의 매사에 시시비비적으로 간여하여 비전문적 구체성에서 차질을 빚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교황께서 항상 권고하시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편리한대로 해석하거나 아전인수식으로 끌어당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그렇게 편협하지 않습니다. 각지역 교회에서의 진취적인 움직임들에 관련된 외신 보도들을 거두절미하지 않고 정확하게 이해하는데엔 때때로 어려움이 따릅니다.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장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제발전이나 과학기술의 개발, 또는 기예면에서는 희망이 있는 것도 같고, 10년여일의 정치풍상을 보면 이민이나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것 같습니다. 새해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는 없으십니까.
▲우리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경제력과 기술면에서도 성장하고 있고 국민적인 저력도 대단합니다. 문제는 실상 20여년 동안 지속되어 오는 민주주의의 시련인데, 우리 모두가 바라는 민주화도 결국 성취되고야 말겠지요. 비민주적 상황이 물리적인 힘에 의해 장구히 지속될 수 있다고 보는 이는 없을 것이며, 따라서 빠르거나 더딘 시간적 차이는 있어도 결국 사필귀정에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겨울이 길거나 혹 심하면 봄이 그만큼 따뜻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봄을 향해 가는 그 긴 터널의 끝에 와 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놈을 기다리고 창조해야 하겠읍니다.
-긴 시간 동안 좋은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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