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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안고 「달리는 흉기」-세밑 음주 운전 기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밑 밤길에 만취 자가용이 무법자로 날뛴다. 마구 달리다 곳곳에서 들이받고 부딪쳐 숨지고 다치고 달아나고…. 한밤 경찰이 공포를 쏘며 추격전을 벌이는가 하면, 택시를 기다리던 모녀를 치어 딸을 죽이고 어머니를 차체에 매단채 2백m나 끌고 가는 등 미친 들소처럼 날뛴다.
오붓하고 단란해야 할 송년가정이 망년회 철을 맞아 이들 고삐 풀린 만취자가용의 질주로 곳곳에서 날벼락 불행에 비명을 터뜨리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의 단속은 있는지 없는지, 일부 유흥가에선 단속을 눈감아주고 「삥당」을 뜯는 사례까지 없지 않아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적발된 음주운전 사고의 처벌조차 들쭉날쭉 기준이 서지 않아 사고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또 한 요인. 자신도, 이웃도 함께 불행에 빠뜨리는 신종 「가정파괴 사범」음주운전을 언제까지 이대로 둘 것인가.
◇실태=22일 밤11시30분 서울 합정동 강변도로.
서울1머××37호 포니 승용차가 시속 1백㎞로 제2한강교 쪽으로 질주한다.
지그잭 차선을 넘나드는 음주운전 자가용. 커브 길에서 앞차를 추월하는 순간 차체는 기우뚱 중앙선을 넘는다. 『끼-익』. 마주 오던 차량들이 황급히 강변 난간 쪽으로 핸들을 틀며 급브레이크. 잇단 경적소리에도 차는 미친 듯 달려 저만큼 가 버렸다.
『개××』하마터면 한강으로 차를 몰아넣을 뻔한 맞은편 쪽 운전자들의 욕설. 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맞은편 차량 가운데도 자가용은 대부분 얼굴에 주기가 도는 손수 운전자.
23일 0시5분쯤 서울 서초동 제일생명 뒤쪽 룸살롱 골목.
비틀거리는 취객들이 골목에 늘어선 20여대의 승용차를 몰고 위태롭게 골목을 빠져나가는데도 단속 경찰 한명 없다.
N카페에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온 안모씨(42·부동산업)가 동료1명과 함께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 신사동 로터리 쪽으로 20여m 진행했을 때 갑자기 앞차가 멈춰 선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안씨의 차는 뒤로 미끄러지면서 뒤에 선 택시를 들이받았다. 놀란 안씨가 차를 앞으로 빼려다 다시 앞차와 충돌.
잠시 후에야 교통순경이 달려왔다.
음주 측정결과 안씨의 혈중 알콜 농도는 0·21%.
◇단속=서울시내에서 하루에 적발되는 교통사고 건수는 1백여건. 그중 음주운전 사고는 4∼5건에 불과하다. 연일 일어나는 음주운전사고에 비추어 단속은 형식에 그치는 인상.
최근 검찰의 집계에 따르면 서울지검 본청 관내 11개 경찰서에서 지난 6월부터 12월까지 일어난 주요 교통사고 중 51%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있으며 뺑소니사고의 55%가 또 음주 운전이었다.
이들 음주운전 가운데 70%는 손수 운전 자가용이었다.
◇처벌=현재 음주 운전은 혈중 알콜농도가 0·05%에 이르면 형사입건하고 0·15%가 넘으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엄격히 지켜지지 않는 실정.
서울형사지법은 지난 12일 혈중 알콜농도 0·47의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하다 적발된 전영준씨(25) 의 구속 영장을 『상습 음주운전자가 아니고 사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기각하는 등 판사마다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외국=외국의 경우 음주운전에 대해서 최하 면허취소 또는 자격정지처분에서 부터 심한 경우 총살형(엘살바도르)까지 처하는 등 엄중 단속 처벌을 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위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고 1∼3년 동안 면허자격을 박탈하며, 프랑스는 교통사고를 일으켜 유죄판결을 받으면 6년간 자격정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말레이지아는 기혼자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배우자까지 수감, 배우자를 선도토록 하고 있으며 공산권인 폴란드·체코는 혈중 알콜 농도 한계 치가 0·03%로 우리보다 엄격한 기준을 세워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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