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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문화읽기] 고래 뱃속서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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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우리 영화 대작들이 한판승부를 겨루는 여름 극장가에 빠지지 않는 메뉴가 있다. 어린이를 위한 3D 애니메이션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도 픽사 스튜디오의 '니모를 찾아서'가 선전하고 있는데, 상영관 분위기를 보자면 어린이보다 어른이 더 재미있어 하는 분위기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노틸러스호의 니모 선장을 기억한다면, 이 영화가 바다와 관련된 영화임을 쉽게 짐작하리라.

영화는 호주 동북부 연안의 산호초 해역에서 살던 광대 물고기 니모가 등교길에 열대어를 수집하는 치과의사에게 잡혀 병원 수족관에 갇힌 뒤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게 된다는 얘기다. 니모를 찾아나서는 아버지 물고기 말린의 모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물고기의 생태나 설정이 줄거리 속에 잘 녹아있다는 점이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블루탕 물고기 '도리'는 '물고기 기억력은 3초'라는 인간들의 오랜 통념을 형상화한 캐릭터다.

실제로 물고기의 기억력이 3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낚은 물고기를 풀어주어도 다시 미끼에 입질을 하는 데서 유래한 속설인데, '만화계의 메멘토'도리는 영화내내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해파리 촉수에 스치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는 설정도 꽤 그럴듯하다. 해파리 촉수에는 '자포'라는 곳에서 독침이 나와 먹이를 잡거나 적을 공격한다.

특히 영화의 무대가 되고 있는 호주 근처에 있는 상자해파리는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있어, 1900년 이후 70여명이나 되는 사람이 상자해파리에 쏘여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꽤 그럴듯한 바다 속 생태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흔히 범하기 쉬운 과학적 오류가 하나 등장한다. 말린과 도리가 고래에게 먹혀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고래가 물위로 떠올라 물을 내뿜을 때 빠져나오는 내용이 있는데, 실제로는 불가능한 설정이다.

우선 이빨 대신 수염판을 가진 고래들은 물을 잔뜩 들이마신 후 수염판으로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를 걸러 먹는다. 따라서 말린이나 도리 역시 고래 뱃속에 들어가면 영락없이 수염판에 걸러져 위산으로 가득 찬 위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고래가 물위로 올라와 물을 내뿜을 때 빠져 나오는 것도 쉽지 않다. 고래가 물위로 떠올라 내뿜는 것은 마신 물이 아니라 사실은 호흡한 공기이기 때문이다.

허파호흡을 하는 고래가 물 속에서 떠올라 흡입했던 공기를 토해내는 것을 '분기'라고 하는데, 이때 수면 위 차가운 공기가 수증기로 응결돼 마치 물을 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가끔 '세상에 이런 일이'류의 책을 보면 고래 뱃속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의 무용담이 실려있긴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니모를 찾아서'로만 만족해야할 것 같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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