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수학] 모래알 수로 만수무강 기원한 김삿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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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수학과 문학은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이 느껴진다. 감성의 정수를 담은 문학작품에 수학이 등장한다면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외로 숫자를 등장시킨 문학작품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신경숙의 소설 '아름다운 그늘'에는 '… 우리들의 권태도 51%를 향해 나귀걸음을 걷고 있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작품에서 숫자는 문학적인 표현에 악센트를 주는 보조적인 장치다. 이에 비해 수학이 보다 본격적으로 반영된 문학작품도 있다.

방랑 시인 김삿갓이 어떤 사람의 회갑연에서 지었다고 알려진 시를 보자.

'可憐江浦望(가연강포망) 明沙十里連(명사십리연) 令人個個捨(영인개개사) 共數父母年(공수부모년)'.(아름다운 명사십리 강포를 보라. 모래알을 일일이 세어보니 그 수가 부모님의 연세와 같구나). 여기엔 부모님의 연세가 모래알의 수와 대응될 만큼 만수무강하시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20세기 초의 수학자 칸토어는 '무한 개념'과 '집합론'의 정립을 통해 현대 수학의 초석을 닦았다. 칸토어 이전에는 '무한'을 명료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한없이 많은 무한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달랐고, 수학에서 이러한 애매모호함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칸토어는 집합론적 관점에서 전체와 부분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성립할 때를 무한으로 규정했다. 김삿갓의 시와 연결시켜 보면 김삿갓은 모래알과 부모의 나이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무한의 수학적 개념을 구현했다고 볼 수 있겠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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