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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분홍 돼지의 방을 찾아 헤매는 마루 구출 특공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스터 장군이 금방 알아차릴 텐데? 너무 어설픈 계획 아니야?”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58> 오벨리스크

골리 쌤이 지적했다.

“쌤, 분홍 돼지는 한두 마리가 아니에요. 적어도 삼십 마리는 넘을 거예요. 마루 한 마리 없어진다고 어떻게 알겠어요? 설마 마루의 등에 ‘마루’, ‘미남’ 이렇게 이름까지 써놓지는 않았겠죠? 이스터 장군이 그렇게 철저하지는 않을 거예요.”

수리는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갔다.

“네 말이 맞다고 치자. 이스터 장군의 부하들은 분명히 분홍 돼지 수를 확인할 거야. 탈출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매일 몇 마리인지 그 수를 세고… 난 이스터 장군이 철저할 거라고 생각하거든.”

사비의 의견에 수리는 다시 난감해졌다. 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잠시 후 수리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가짜 분홍 돼지를 만들자. 어때요? 쌤?”

수리는 조금 전보다 더 의기양양했다. 골리 쌤은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계획은 아닌 거 같아. 수리야.”

사비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수리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수리는 사비·아메티스트와 함께 왕과 왕비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짜 분홍 돼지를 만들 다른 동물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왕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너희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다. 왜냐면 분홍색을 가진 동물도 없거니와 다른 동물에게 분홍색 칠을 하고 돼지 얼굴로 분장을 한다면 그건 동물을 학대하는 꼴이야. 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어.”

“다른 동물을 괴롭히는 거라면 저도 반대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친구라도 그건 마루도 반대할 거예요. 또 우리들은 계속 죄책감을 갖게 될 거예요.”

그때 왕비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방법 하나를 제안할게요. 선택하는 건 너희 몫이야.”

모두 왕비를 쳐다보았다.

“이스터 장군의 부하들은 수정과자를 좋아해. 그런데 이건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아주 귀한 음식이야.”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다면, 언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죠?”

수리가 물었다.

“레뮤리아 왕국은 일 년에 딱 한 번만 이 수정과자를 먹지. 딱 하루! 그날 오벨리스크에만 눈이 내리거든. 그날, 오벨리스크에 내리는 눈과 오벨리스크의 캔 수정을 함께 버무려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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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보관해 둔 눈과 수정은 없어요?”

왕과 왕비가 크게 웃었다. 수리는 어리둥절했다.

“과자를 만드는 수정이 많이 나온다면 일 년에 한 번만 먹을 필요가 없잖아? 정말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 그리고 오벨리스크는 이스터 장군이 관리하지.”

수리는 실망했다. 사비도 골리 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내가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너무 실망하지 마.”

왕비는 실망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다행히 내가 먹지 않고 보관한 수정과자 세 개가 있어.”

수리가 박수를 치며 뛸 듯이 기뻐했다.

“세 개뿐이니 적재적소에 써야 할거야. 이 수정과자는 천 가지 맛을 내. 세상의 모든 맛을 낼 수 있는 거지. 입에 넣는 순간 자기가 원하는 맛에 취하고 자기가 원하는 꿈을 꾸지. 그러기 위해 잠에 빠진단다.”

왕비는 늘 그렇듯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꿈을 꾸죠? 그 시간 동안 마루를 구해올 수 있을까요?”

사비가 물었다. 왕비는 마치 엄마 같이 사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비는 물끄러미 왕비를 쳐다보았다.

“이 수정시계가 말해줄 거야. 수정시계의 수정이 다 없어지지 전에 마루를 구해서 나와야 해. 발각되면 이스터 장군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우리도 구해줄 수 없어.”

수리는 왕비의 말이 끝나자 소리를 질렀다.

“좋았어. 특공대를 투입하면 된다고!”

“특공대? 하하하.”

왕과 왕비가 동시에 웃었다. 수리는 왕비가 준 세 개의 수정과자를 손에 꼭 쥐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벨리스크 계단

이스터 장군은 첫 번째 별이 뜰 무렵에 반드시 잠이 든다고 했다. 그 별은 글리제 189 별이었다. 수리와 사비, 모나는 분홍 돼지들이 갇힌 오벨리스크 앞에 도착했다. 오벨리스크 앞에는 두 명의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수리·사비·모나는 오벨리스크 근처에서 글리제 189 별이 뜨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드디어 별이 떴다. 별이 푸르게 반짝였다. 먼저 사비가 움직였다. 사비는 늘 입고 다니던 바지를 벗고 예쁜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손에 수정과자가 든 작은 바구니를 들었다. 사비가 오벨리스크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들에게 다가갔다.

“멈춰! 누구냐?”

군인들이 소리쳤다.

사비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 아시죠?”

군인들은 사비를 보고 멈칫했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서로 시선을 교환했지만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누군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저와 친구들은 레뮤리아 왕국의 왕과 왕비님 친구예요. 저희가 왕국에 도착한 후….”

사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군인이 아는 척했다.

“아, 알아. 커다란 공룡과 같이 온 아이들이지?”

사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시간에 안 자고 여긴 무슨 일이야?”

“저에게도 오빠가 있어요. 그쪽과 비슷한 나이쯤 되는 것 같아요. 왕비님에게 오빠가 보고 싶다고 하니까, 왕비님이 이 수정과자를 주셨어요. 이 수정과자를 먹고 오빠 꿈을 꾸라고 했어요.”

사비는 수정과자를 슬쩍 보여주었다. 군인들은 이미 수정과자에 정신이 팔려 눈을 떼지 못했다.

“넌, 수정과자 안 먹을 거야? 오빠 꿈을 꾸고 싶을 텐데… 아니야?”

한 군인이 사비에게 물었다.

“오빠 생각이 나긴 하는데, 오빠와 닮은 그쪽이 먹으면 제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서요. 제가 너무 무례했나요?”

사비는 몸을 꼬았다. 군인이 사비의 팔을 잡았다.

마루를 구하기 위해 머리를 모은 친구들은
왕비가 제안한 방법을 쓰기로 하고
분홍 돼지들이 갇힌 오벨리스크에 도착
간신히 보초를 재우고 그 안에 들어가는데

“가지 마. 넌 너무 착하구나. 나도 너만 한 여동생이 있어. 가끔 먹을 걸 챙겨서 오곤 했지. 마음이 너무 착하네. 우리가 먹어도 될까, 그 귀한 걸?”

군인은 진짜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이 수정과자를 먹어주시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사비는 수정과자 두 개를 군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 수정과자를 집은 뒤 커다란 입에 넣었다. 곧 황홀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무기를 내려놓고 오벨리스크 벽에 기대어 앉아 잠을 자기 시작했다.

사비가 뒤돌아 작게 소리쳤다.

“빨리 와. 어서!”

수리와 모나가 빠르게 달려갔다.

“어서 가자. 따라와.”

모나가 먼저 앞서갔다.

오벨리스크 안은 어두웠다. 모퉁이에 횃불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두웠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덩그러니 계단만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오벨리스크의 높이를 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계단이 있을 거라고 짐작됐다. 모나가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사비가, 마지막으로 수리가 따랐다. 한참 계단을 오를 때였다. 문득 수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방금까지 계단을 올랐지만 밟았던 계단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허공이었다. 아래는 까마득했다. 하지만 사비에게 말하지 못했다. 말하면 분명히 놀라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할 게 뻔했다. 또 한참을 올랐다. 아무리 올라도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나, 이상해요. 미로를 돌고 있는 건 아닐까요? 계단에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수리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모나도 헐떡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올랐는데… 끝이 없다고?”

“난 하나도 안 힘들어.”

사비는 오히려 힘이 넘치는 듯했다.

“혹시 펜로즈의 계단 아닐까? 끝도 없고, 같은 곳을 계속 도는 거 말이야.”

수리의 말에 사비가 강하게 부정했다.

“절대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돼. 절대. 그럴 리 없어. 자, 가자.”

이번엔 사비가 먼저 다다다 올랐다. 모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수정시계 확인해 봐.”

시계 속 수정가루는 이미 절반이 사라지고 없었다.

“큰일이네. 어떡하죠?”

모나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마루가 갇힌 방이 꼭대기에 있다는 증거도 없고.”

“그렇긴 한데… 지금까지 우리가 계단을 올랐지만 계단 밖에 없었잖아요? 이 오벨리스크는 그냥 계단만 있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이상해요. 이런 걸 왜 만들었을까?”

수리는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비밀스런 신호를 보내기 위해 만들었지도 몰라. 어쨌든 마루가 갇힌 방은 어디 있을까?”

그때 사비가 수리와 모나를 불렀다.

“어서 올라와.”

수리와 모나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사비가 계단에 서 있었다. 계단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수리와 모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지만 사비는 표정이 밝았다.

“찾았어.”

“뭘?”

“저길 봐.”

수리는 사비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까마득한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 분홍 돼지들의 방이 있었다.

“저 아래 있는 걸… 괜히 올라왔네. 다시 내려가자.”

사비가 수리를 말렸다.

“이 바보. 분홍 돼지들의 방은 저 아래에 있지만 우리가 이 계단까지 올라오지 않으면 저 방은 보이지 않아.”

수리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나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계단, 이 계단이 답이야. 계단이 끝나는 곳에 서야지만 저 방이 보여.”

사비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럼 어떻게 저 방에 내려갈 수 있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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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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