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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설탕 많이 쓴다? 좀 달지만 맛있다 해도, 싱거운데 맛있다곤 잘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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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쿡방 스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요즘 대세인 ‘먹방(먹는 장면을 주로 담은 방송)’이나 ‘쿡방(요리법을 소개하는 방송)’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남자가 있다. 바로 백종원(50) 더본코리아 대표다. 그는 요리법을 직접 알려주거나, 맛집들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의 개척자이자 선두주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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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대표는 “먹는 걸 좋아해서 요리를 시작했다. 요즘도 하루 세끼 메뉴를 미리 정할 만큼 음식을 좋아한다”면서 “출발을 소비자 입장에서 했으니, 사업도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20일 더본코리아 본사가 있는 서울 논현동의 영동시장 먹자골목을 찾았다. 골목 안에는 일명 ‘백종원 거리’가 있다. 길이 100m쯤 되는 구간에 그가 경영하는 10개 프랜차이즈 음식점(직영 9곳)이 몰려 있다. 23년 전 요식업에 뛰어든 ‘청년 백종원’의 땀과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19개 브랜드, 1267개 프랜차이즈
새마을식당·본가·홍콩반점·빽다방
음식점 아닌 도·소매업으로 분류

매장 너무 많아 골목상권 위협 논란
다양한 업종 원하는 창업자들 도와
공정경쟁 했는데 반칙이라니 억울

방송에 자주 나와 사업하는데 덕봐
얼굴 알려져 사람 관심 끄는데 유리
욕도 먹지만 노하우 전수하고 싶어

하지만 백씨는 “먹자골목에 모여 있는 식당들을 다른 곳들로 분산시켜 이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왜일까. “20년에 걸쳐 하나씩 문을 연 가게인데도, 골목에 모여 있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는 것 같아요.”

최근 국정감사에서 자신이 대표인 더본코리아가 ‘문어발 확장’과 ‘골목상권 위협’ 논란에 휩싸였던 걸 의식한 얘기였다. 더본코리아는 현재 새마을식당·한신포차·본가·홍콩반점0410·빽다방·백’s 비어 등 19개 브랜드, 1267개 매장(직영 16곳)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액 1239억원, 영업이익 109억원을 기록했다. 그는 “가만히 있으니 왜곡된 내용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인터뷰에 응했다”며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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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본코리아 본사에는 조리연구실과 음식 촬영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다. 20일 본사 직원들과 신메뉴를 맛보며 대화하는 백종원 대표. [사진 김성룡 기자]

지난달 국감에서 꽤 논란이 있었다.
“속상해서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룬 기업인데 마치 반칙이라도 한 것처럼 비쳐 억울하다. 더본코리아는 식자재 유통업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도·소매업이다(※국감에선 더본코리아가 ‘음식점’이 아닌 ‘도·소매업’으로 분류돼 중소기업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신규 사업 진출과 매장 확대에 있어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99%가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점주들은 모두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소상공인이다. 골목상권 위협은 이를테면 30평짜리 고깃집 옆에 100평짜리 고기 식당을 차려 작은 식당을 망하게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뿐이다.”
프랜차이즈의 종류가 너무 많아 논란이 더 한 것 아닌가.
“브랜드가 많은 건 사람들이 창업하고자 하는 업종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고기·중식·쌈밥·김치찌개·커피 등 다방면에서 내가 개발한 레시피와 식당 경영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나는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인 셈이다. 또 대중적 음식들을 거품을 뺀 합리적 가격에 푸짐하게 제공하는 게 내가 추구하는 점이다. 경영의 안전·지속성을 위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측면도 있다.”
그동안 돈을 많이 벌지 않았나.
“매출액과 실제로 버는 돈에는 차이가 있지 않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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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대표는 국내를 대표하는 요리 엔터테이너다. 그가 출연 중인 음식 프로그램 ‘백종원의 3대 천왕’. [사진 SBS 화면 캡처]

방송에 자주 나와 사업에 덕을 보는 것 같다.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유리할 순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맛과 가격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한 번 오고 말 것이다. 내가 방송에 출연한 지는 2년 됐지만, 요리를 연구한 건 20년이 넘었다. 방송 섭외도 요리에 관한 내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을 타면서 욕을 먹으니 괴로울 때도 있지만, 내 노하우를 많은 사람과 나눈다는 데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일부에선 ‘백종원 음식’은 종류에 상관없이 맛이 다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내 식당의 타깃층도 미식가가 아닌 대중이다. 수제 버거와 일반 버거를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과연 금방 구분할 수 있을까. 인식이나 주변 분위기도 맛에 영향을 끼친다. 프랜차이즈 음식이 주는 선입견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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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백선생’. [사진 tvN 화면 캡처]

방송에서 요리법을 소개할 때 설탕을 너무 많이 쓴다는 비판도 나온다.
“요리 초보자가 요리책에 있는 대로 요리하면 맛있기가 쉽지 않아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좀 달긴 한데 맛있다’는 말은 해도 ‘싱거운데 맛있다’는 말은 잘 안 하지 않나. 설탕을 활용해 요리에 자신감을 얻은 뒤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절하면 되는 것이다. 레시피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하고 발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백종원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먹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건빵 하나도 버터에 볶아 설탕을 뿌려 먹는 식이었다. 요리도 독학으로 익혔다. 먹어 본 음식의 조리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본 뒤 만들어보곤 했다는 것이다.

너무 바쁜 것 같던데 요리 연구는 언제 하나.
“주방 밖에서도 늘 요리 생각을 한다. 음식은 주방에서만이 아니라, 머릿속으로도 할 수 있다. 밤에 자려고 누워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음 날 눈 뜨자마자 해본다. 회사에서 내가 주재하는 회의는 없다. 내가 직원들 자리로 가서 ‘이 음식에 이 재료를 넣은 음식이 있다면 사 먹을 것 같으냐’고 의견을 물어보는 게 전부다.”

그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호프집 등을 주인과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인수해 10억원 넘는 돈을 벌었다는 일화도 남겼다. 그 뒤 장교로 입대해서는 간부식당의 음식을 직접 조리했다. 당시 식재료를 대량으로 구입하고, 식단에 대한 장병들의 생생한 반응을 접한 경험이 훗날 식당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제대 후에 바로 요식업에 뛰어들었나.
“목조주택사업과 쌈밥집 운영을 동시에 했다. 당시엔 건축 일이 멋져 보였고, 식당에서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히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식당을 남에게 맡겨 놓았더니 적자가 났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건축업도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빚만 17억원이 됐고, 내게 남은 건 쌈밥집 하나뿐이었다. 이 일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손님들을 진심으로 대하게 됐고, 요리의 소중함을 깨쳤다.”
원래 집안이 넉넉했다고 들었다. 사업에도 덕을 보지 않았나.
“넉넉한 집안 환경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먹고 싶은 거 실컷 먹었으니 덕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사업을 할 때 부모님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더본코리아는 최근 제주도에 ‘호텔 더 본’을 짓고 호텔 사업에도 진출했다.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인 이 호텔에는 본가 등 더본코리아의 식당도 입점할 예정이다.

기부에 다소 인색하다는 얘기도 있다.
“하고 있지만…. 내 입으로 자세히 말하긴 그렇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업가가 자신이 번 돈의 반을 기부하는 건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보면 사업가는 큰돈을 사업에 투자함으로써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외식사업을 시작했지만, 요즘엔 어떻게 하면 싼 가격에 좋은 음식을 낼까 고민한다. 외식업의 지형이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당과 음식을 즐기기 위한 식당으로 나뉘어야 한다고 본다.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당의 식단은 가능한 한 저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 자본에 밀리지 않는 경쟁력 있는 토종 브랜드를 만들어 한국의 음식문화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

[S BOX] “아내 소유진 요리도 수준급…집에서 6대 4 비율로 해요”

백종원 대표의 부인은 탤런트 소유진(35)씨다. 인터뷰 내내 무겁던 백씨의 표정이 가장 밝아진 건 아내 얘기를 할 때였다. 두 사람은 2013년 결혼해 아들 용희(2)군과 딸 서현(1)양을 뒀다. 결혼 당시 15살인 두 사람의 나이차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백씨는 “탤런트 심혜진씨의 소개로 만났는데 먹는 것과 요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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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결혼한 백종원·소유진씨 부부는 자주 집에서 요리를 함께한다. [사진 소유진 인스타그램]

백씨는 집에서 아내에게 요리를 자주 해준다고 했다. 백씨가 연구한 요리를 맛보는 ‘최초의 시식자’가 주로 소유진씨다. “집에서 요리는 저와 아내가 6대 4의 비율로 해요. 아내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죠. 결혼 전에도 곧잘 했는데, 제가 이것저것 가르쳐주니 쑥쑥 늘었어요. 아이들 음식은 직접 다 해주죠.” 그의 집엔 여러 대의 냉장고가 있고 갖가지 신선한 재료들이 늘 갖춰져 있다고 한다.

그는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로 ‘아내의 영리함’을 꼽았다.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제가 표정이 밝지 않으면 아내가 제 기분을 많이 배려해줘요. 사업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예민해질 수 있는데 아내에게 참 고맙죠.” 백씨는 자신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쉬운 일은 ‘육아’라고 했다. 그는 “두 아이가 태어난 후론 아이들과 놀기 위해 집에 일거리도 가져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딸이 나를 닮아 걱정”이라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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