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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도 넘은 우병우의 국회 무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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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국회 운영위원회는 국정감사 역사상 처음으로 청와대의 기관증인 출석 거부자를 고발키로 했다. 정진석 운영위원장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거듭된 국회의 요구를 거부함에 따라 다음주 초 증인 불출석죄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정감사 및 증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돼 있다. 그 며칠 전부터 국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동행명령장이 제출되더라도 불출석할 것”이라고 큰소리치던 우 수석에게 국회로선 최소한의 자존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운영위, 국감 증언 거부 고발키로
박 대통령 지침 없으면 불가능해
통치력 스스로 훼손한 자가당착

 일련의 사태는 한마디로 우 수석의 오만의 극치이고 청와대의 국회 경시, 위법적 행위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통치력을 훼손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보·경제 위기상황에 ‘최순실 게이트’까지 덮친 뒤숭숭한 정국이다. 여기에 우병우를 둘러싼 대통령과 입법부의 정면 충돌이 겹쳤으니 도대체 나라는 누가 이끌고 국민은 누구를 의지해야 하나.

 우병우 문제를 놓고 국회 운영위에서 벌어진 여야 논쟁은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우 수석 소환에 소극적이었던 새누리당의 논리는 무력하고 설득력이 없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감에 출석하느라 청와대에 부재하니 우 수석이라도 있어야 한다거나, 각종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때문에 우 수석이 불출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야당 의원들에 의해 일일이 격파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비서실장과 같은 시간대에 국회 증언대에 함께 선 경우는 노무현 정부에서 문재인·전해철 민정수석의 전례가 있다. 박근혜 정부에선 끝까지 국감 출석을 거부한 김영한 민정수석의 경우 아예 그 직에서 사퇴함으로써 최소한 현직의 법률 위반 논란은 피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중이라 나올 수 없다는 논리도 최순실 게이트로 수사 대상에 오른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출석함으로써 허망해졌다. 결국 우병우 불출석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쪽으로 의견이 수렴됐으니 여야가 국회 무시에 대해선 하나로 합친 셈이다.

 이에 따라 운영위는 국회 출석을 재차 요구했으나 우 수석은 또 일축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우병우가 김재원 정무수석의 얘기를 듣겠느냐. 이원종 비서실장이 직접 전화하라”고 여러 번 요구하는 장면은 블랙 코미디와 같았다. 상급자인 비서실장의 전화조차 우 수석이 외면했으니 안하무인도 이럴 수가 있나 싶다.

 우병우의 낯 두꺼운 행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 전체를 모욕한 것이다. 우 수석이 이처럼 대담하게 국회 모욕과 법률 위반을 저지르는 뒤에 박 대통령의 지침이 없을 수 없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국회는 우 수석의 위법성을 끝까지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날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법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청와대부터 입법부를 존중하는 법질서를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