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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북 확장억제 인식차 드러낸 한·미 국방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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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할 때마다 미국은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 수단을 총동원해 한국을 방어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또 그때마다 B-2, B-52 같은 전략 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으로 급파하는 무력시위를 통해 한국 국민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급속히 고도화하면서 미국이 공약한 대북 확장억제력의 신뢰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할 경우에도 과연 미국이 뉴욕이나 워싱턴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란 것이다. 일각에서 자체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핵추진잠수함 자체 개발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제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이 미 전략자산을 한반도와 인근 해상 및 상공에 상시적으로 순환배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은 이러한 우려와 의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략폭격기와 전략핵잠수함, 핵추진항모 등 미 전략사령부가 지휘·통제하는 무기 체계를 한반도와 그 주변에 일정 주기로 순환배치함으로써 사실상의 상시 배치 효과를 노린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유사시 북한의 핵도발에 즉각 대응함으로써 확장억제력의 실행력을 담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이 구상은 빠졌다. 향후 신설될 확장억제전력협의체(EDSCG)에서 논의할 검토 과제로 넘어갔다. 구체적인 전략 옵션을 공개하는 것이 억제력 확보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이 중국을 의식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국방부가 사실상 합의가 다 된 것처럼 사전 브리핑하는 바람에 어제 대부분의 한국 언론이 오보를 냈다. 국방부의 어설픈 과욕과 조급증이 빚은 ‘참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를 요구하고, 미국은 난색을 표명하면서 북핵 대응을 둘러싼 한·미 간 인식차가 드러났다. 확장억제력의 신뢰성 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일이 한·미 간의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