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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젠 과학계 인사까지 친박 타령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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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가장 순수하고 전문적이어야 할 과학기술계가 정치적 외풍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7월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지난달 김승환 한국창의재단 이사장이 뚜렷한 이유 없이 임기 중 하차한 데 이어 정부 출연기관 이사회가 투표로 결정한 원장 후보를 정부가 퇴짜 놓는 일까지 벌어졌다. 모두 특정인을 앉히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빚어진 과학계 참사라는 의혹이 나돌고 있다.

논란의 정점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엊그제 승인을 거부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연구원(KISTEP) 박영아 원장 재선임 문제다. 박 원장은 지난달 28일 이사회 투표에서 13표 가운데 7표를 얻어 임기 3년의 8대 원장에 재선임됐다. 그런데 최 장관이 그동안 특별한 이유 없이 승인을 미뤄 오다 퇴짜를 놓은 것이다. 지난 1999년 출범한 KISTEP에서 이사회 추천 원장 후보를 정부가 거부한 건 처음이다. 미래부는 “개인의 인사 사항을 외부에 알릴 수 없는 일”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등 야권은 ‘청와대 개입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가 지난 4월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친박계 이인선씨를 밀었다가 탈락하자 보복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계명대 식품가공학과 교수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원장을 지냈다. 그런데 18대 국회 때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친이명박계인 박 원장(명지대 물리학과 교수 출신)에게 밀리자 몽니를 부린다는 것이다. 행여 사실이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과학기술에 웬 친박·비박이란 말인가.

KISTEP은 기술발전 추이를 예측하고 한 해 13조원 가까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조정·배분·평가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그런 곳은 전문성은 물론 식견·행정력을 골고루 갖춘 인물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 ‘기술로 나라를 세운다’는 과기입국(科技立國)의 정신을 살려 4차 산업혁명에 앞서갈 수 있다. 미래부는 일련의 의혹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후임 선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기 바란다. 과학이 정치에 휘둘리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