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유 병역거부 2심 첫 무죄…법원 “대체복무 길 터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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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하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1심 무죄 판결은 종종 있었지만 항소심에서 무죄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책 마련 않고 입영 강요 안 돼”
여호와의 증인 신자 3명 손 들어줘
대법 2004년 유죄 판례 뒤집은 셈
10년간 거부자 5723명…논란 예상
국방부 “현역병 사기 저하 우려”

광주지법 제3형사부(부장 김영식)는 18일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하지 않은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A씨 등 여호와의 증인 신자 3명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전원 무죄 판결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5월 광주지법의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사가 항소했다. B씨와 C씨는 각각 지난해 6월, 올해 5월 광주지법 목포지원의 1심에서 유죄 판결(징역 1년6개월)을 받고 항소했다.

2004년 5월 서울남부지법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재판에서 첫 무죄 판결을 한 이후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은 전국의 법원에서 종종 나왔다. 이들 판결은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치면서 뒤집혀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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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세계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도 대체복무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A씨 등의 손을 들어 줬다. 또 “(피고인들은) 면제 등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며 “국가가 대체복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입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동안 사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타협적인 판결을 해 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2000년대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재판이) 군사재판에서 일반재판으로 넘어온 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죄로 판단해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법정 구속하진 않았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판결 확정 전까지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병역법 제88조(입영의 기피 등)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들은 통상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 왔다. 병역법 시행령에 따라 1년6개월 이상 실형이나 금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면 제2국민역으로 편입돼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등에 따르면 종교적인 문제로 입영을 하지 않는 등 병역을 거부한 입영 대상자는 2006년 이후 10년간 5723명에 달한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5686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앞서 대법원은 2004년 7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처음 유죄 판결을 했다. 헌법재판소도 이들에 대한 병역법의 처벌조항이 합헌이라고 2004년 8월과 2011년 8월 잇따라 결정했지만 무죄 판결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이 최근 9번 났고, 항소심에서 처음으로 무죄 판결이 났는데 또 무죄 판결이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었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에서 일관되게 유죄 판결을 해 왔다”며 “당분간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 판결 판례 취지가 변경될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 헌법재판소 국감에서도 새누리당 주광덕 의원은 “합헌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2011년 6월부터 지난 8월까지 동일한 내용의 28건이 헌재에 계류 중”이라며 “대부분 법정 처리기간인 180일을 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임기를 마치는 날(내년 1월 30일)까지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입영 및 집총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도입은 현역병 사기 저하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박성훈·현일훈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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