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힘 vs 돈의 힘…'약값 전쟁' 누가 이길까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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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맞물려 높은 투표율 예상
양당 대결에 제약사 굴복 관심

'1억 달러'사상최대 자금 투입
주정부는 대책없어 '전전긍긍' 

시니어가 되면서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는 것이 바로 '처방약'이다. 물론 공짜는 없다. 약값에 대한 부담감으로 메디케어 플랜도 바꾸고 옮겨도 보지만 부담은 여전하다. 그렇다고 약을 줄일 수도 없는 일. 그렇다면 약값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정치권에 있다면 시니어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얽히고 설킨 로비와 인맥 탓에 제약회사가 욕심을 줄이는 일은 미국사회에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제기된 '주민발의안 61'이 내달 8일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게된다. 투표권을 가진 시니어들이라면 반드시 내용을 잘 살펴보고 기표에 참여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의안 내용과 추진 배경, 투표결과에 대한 파장을 진단해 본다.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61(California Proposition 61)은 '약값 기준(Drug Price Standards)'이라는 이름으로 투표용지에 오른다. 일단 제약업계가 관련되면 발의안에는 '돈'이 화제가 되는데 이 발의안의 찬반을 두고 모인 캠페인 자금이 무려 1억달러가 넘어섰으니 다시한번 확인된 셈이다. 가주 역사상 최대 액수로 기록됐다. 그도 그럴 것이 캘리포니아에서 지난 한해동안 38억 달러의 처방약이 팔려나갔으며 이중에 무려 83%가 메디캘과 공무원 연금시스템인 '캘퍼스(CalPERS)'를 통한 것이었다. 현재 규정상 캘리포니아는 주정부가 직접 제약사의 약값을 '협상'을 통해 조정하고 있다. 생필품인 약값이 오를 경우 주민들의 경제생활과 물가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관계부서가 따로 제약사와 협상을 하기도 하고 다수의 부서가 다수의 회사들의 약값에 대해 제동을 거는 경우도 종종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의도로 발의안을 주민투표에 부친 것일까.

'낮은 약값을 위한 가주민연대(Californians for Lower Drug Prices)'가 내놓은 이 발의안의 핵심 내용은 '연방법으로 규정하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정 제약사의 제품을 주정부가 연방보훈청의 지불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구입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보훈청은 자체 시스템을 통해 제약사들의 약가격을 조정하는데 '군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약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주정부가 향후 제약회사와 협상에 나설 때 가격 제한을 보훈청 기준으로 맞추자는 주장이다. 약값을 강제로 내리게 하자는 취지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버몬트), 마이크 혼다 연방하원의원, 데이비드 치우 가주하원의원, 칸센 추 가주하원의원 등이 발의안을 지지하고 있다. 동시에 가주녹색당, 새크라멘토와 벤투라 등 주요 카운티 민주당 그룹이 찬성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반대측인 '기만적인 약값 발의안에 반대하는 가주민 연합(Californians Against the Deceptive Rx Proposition)'의 목소리는 이렇다.

일단 약값을 보훈청 기준으로 낮추게 되면 결국 전체 약값의 상승을 부추기면서 선의의 피해는 퇴역군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며 결국 일반 환자들의 투약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제약회사의 소송이 불보듯 훤해 혈세를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대 광고에는 주로 참전군인들이 등장해 부당함을 강조하고 있다.

반대 운동에는 가주공화당, 가주자유당, 샌프란시스코 민주당, 가주상공회의소 등이 움직이고 있으며 머크앤코, 화이저, 존슨앤존슨, 앰젠, 앱바이, 사노피아벤티스 등 주요 제약업계 9곳이 지원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양측 모두 약값을 높이는데 반대하고 있으면서도 방법론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속내는 어떨까. 발의안에 찬성하는 쪽은 10월초 현재까지 1460만 달러를 모았으며 반대쪽은 무려 8690만 달러를 모금했다는 것이다. 1:6의 비율이다. 이는 반대측의 자금에 순수한 민간인들의 지원금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당연히 제약업계가 대거 반대쪽을 지원하고 있다. 찬성측에 모인 자금 99%는 '에이즈보건재단'에서 지원했다.

발의안이 통과될 경우 주정부의 재정상 여파를 분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발의안의 민의를 수용하고 약값을 보훈청 수준으로 낮춘다. 주정부는 당장 제약사들의 양보가 있더라도 추후 보훈청에 제공되는 약품 이외의 제품에 대해 가격을 소폭 올리면 손실을 매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전반적인 약값 상승이 불가피하다. 통과 시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발의안이 봇물을 이룰 것이며 제약사들이 대규모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우려된다.

2) 제약회사들이 발의안 내용을 거부하고 약값 할인을 하지 않는 경우다. 이런 상황에서 주정부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메디캘 등 주정부 프로그램의 처방약 가격 구조를 전면 재편하는 것이다.

3) 보훈청과 같은 가격을 제공하되 아예 기준인 보훈청 약값을 올리는 경우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비용 보전을 위해 제약회사들이 감행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결국 이번 발의안은 거대 공룡 제약사들의 약값을 민의를 기반으로한 정부의 통제로 조정할 수 있을 지 여부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며, 보기에 따라선 자본경제 시스템에 과도한 정부 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어 통과시 적지 않은 파장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10월 첫주 현재 주요 여론조사에 따르면 발의안 찬성 여론은 61~69% 가량에 달하고 있다.

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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