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재인, 18일 북 의견 묻자 결정” “노 대통령 16일 이미 결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2007년 11월 20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투표에서 한국은 기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권을 주장한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손을 들어준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강하게 반발했다.

북인권결의안 서별관회의 진실은
송 “16일 회의 뒤 대통령에게 서한
18일 모임 때 기권 못한다 버티자
김만복 국정원장, 북에 확인 제의”
김 “그런 것 자체가 거론 안 됐다”
백종천 “쪽지는 북한 동향 보고서”

그는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김 전 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에 의견을 묻자’고 제안했고, 문재인(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 보자’고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추천 기사

하지만 다른 회의 참석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해 11월 15일부터 20일까지 6일간의 진실을 회고록(『빙하는 움직인다』)과 회의 참석자 등의 증언으로 짚어봤다.

기사 이미지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선=논란의 발단인 북한인권결의안과 관련한 첫 안보정책조정회의는 그해 11월 15일 열렸다. 송 전 장관은 유엔에서의 표결 시 ‘찬성’을 주장했지만 이 전 장관과 김 전 원장, 백종천 전 대통령 비서실 외교안보실장은 ‘기권’을 고집했다. 문 전 실장은 ‘기권 3, 찬성 1’의 회의 결과를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여기까진 당사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

다음날인 11월 16일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 송 전 장관과 이 전 장관은 다시 충돌했다. 이 전 장관은 본지 통화에서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북한인권결의안 문제를 ‘기권’으로 결론지었다”고 주장했다. 송 전 장관이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

송 전 장관은 청와대에서 나온 뒤 이날 밤 10시쯤 노 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왕조시대에 상소문을 올릴 때 심정이었다”며 서한에 장관직을 물러날 의사를 비췄다고 밝혔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청와대 서별관에서 11월 18일 관계자들이 다시 모였다. 회의에서 송 전 장관은 “내가 장관 자리에 있는 한 기권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면서 자신이 계속 같은 입장을 유지하자 김 전 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한 북한의 의견 확인을 제안했고 문 전 실장이 수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정부 당국자는 “문 전 실장이 결론을 주도했다기보다는 비전문가이다 보니 통일부와 국정원 분위기에 휩쓸려 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백 전 실장은 16일 본지에 “전혀 그렇지 않다. 기권 결정을 북한에 통보하자는 문제가 논의됐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이나 김 전 원장은 그동안 북한에 정부의 기권 입장을 통보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본지 통화에서 “18일 회의에서 북한에 물어본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기권으로 결론이 이미 났는데 북한에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원장도 “북한에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회의에서) 거론된 적이 없다”고 했다. 북한의 의견을 확인하기로 했다는 송 전 장관의 증언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관련 기사

◆11월 20일 ‘북한 쪽지’의 존재는=서별관회의 다음날인 19일 노 전 대통령과 송 전 장관, 백 전 실장은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떠났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20일 저녁 대통령 숙소에서 불러 가니 백종천 전 실장이 쪽지를 들고 있었다. 그날 오후 북측으로부터 받은 반응이라면서 나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줬다.”

쪽지엔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백 전 실장은 “정보기관 등에서 보내는 A4 용지 1~2장 분량의 통상적인 동향 보고였다. 북한이 보낸 메시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는 “안보실은 실제로 북한의 반응과 각국 동향을 정리해 보고 한다”며 “송 전 장관이 동향 자료를 북한의 메시지로 이해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당국자는 “표현을 보면 실제로 우리 측이 북한의 의견을 구한 것에 대한 반응이란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최익재·전수진 기자 ijcho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