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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발언 재확인한 김수환 추기경|"권력 집착 떠나야 문제 풀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5년 전, 정확하게 말하면 80년부터 생각해 오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문제가 욕심을 떠나면 복잡한 문제도 아니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보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지난달 10일 로마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20주년이후 신학교와 선교에 대한 문제」회의에 참석하고 재 서독 교포 신자 방문 차 출국했다가 2일 하오 귀국한 김수환 추기경은 다소 피로하나 평안한 모습으로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욕심을 버리자』는 자기의 로마 발언을 설명했다.
공항에서 함세웅 신부 등의 영접을 받으며 자신의 로마 발언이 일으킨 국내 파문에 대해 전해듣고 『국내 사정도 파악한 뒤 포괄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도 김 추기경은 귀빈실에서 보도진들의 질문공세에 담담한 표정으로 로마발언의 배경을 얘기했다.
이 자리에는 환영차 나왔던 민정당의 김현욱·허청일 의원과 신민당의 박찬종 의원, 허만일 문공부 종무 실장, 김범도 사특처장 겸 명동성당 주임 신부, 이기정 교육 국장 신부, 박영식 비서 신부 등이 배석.
-로마 발언 내용을 당사자들에게 직접 얘기하신 적이 있읍니까.
『사석에서 한 일이 있읍니다』
-어떤 이 유에서 이 시점을 택해 그같은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시게 됐읍니까.
『문제를 해결한다는 헌특은 만들어놓고 중단된 채 더 이상 진전이 없는데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해보면 권력이 무엇인지 그것을 놓고 누가 잡느냐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여당은 듣기 싫을지 몰라도 (허 의원을 가리키며) 잡은 사람은 놓기 싫어하고, 야당은 내세우는 명분은 좋지만 집권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고 그것을 버리면 순조롭게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에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 같은 생각을 직접 납득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내 말을 누가 들어줘야지…(웃음) 내 말을 들어주겠다면 발 벗고 나서겠는데…』김 추기경은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내 말을 들어줄까』라면서 허 의원에게 『전에 비서실장도 한 적이 있으니 중재에 한번 나서주시오』했는데 허 의원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고 대답.
『욕심이 없으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모든 문제가 오순도순 풀릴 수 있어요. 많은 일을 해야할 시점에서 끝없는 말시비로 세월을 보내고 극한대립으로만 나날을 연명해서는 안되지 않겠어요. 대통령이 먼저 김영삼·김대중씨와 만나 솔직하게 대화를 해야 합니다. 늘 해왔던대로 「나는 88년에 그만둡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사정이 이렇습니다. 당신들의 주장도 듣고 있지만 솔직이 나라 사정이 이러니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고 하면 국민들은 그 말에 모두 귀를 귀울 일 것이고 이렇게 모든 문제가 잘 풀리면 88올림픽도 순조롭게 진행될텐데 왜 그렇게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김 추기경은 이 대목에서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는데 가끔씩 탁자를 손으로 쳐가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추기경은『우리 국민처럼 부지런한 백성도 없어요. 그러나 단 한가지 문제는 힘을 합하고 정직하면 좋겠습니다. 정치도 정직해야 됩니다. 우리 나라가 잘 되려면 어릴 때부터 정직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욕심이 앞서면 처음엔 잘 돼가는 것 같다가 결국 나중에는 잘 안되지 않습니까. 그런 기업들도 많이 보지 않았읍니까』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언젠가 어렵게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갔더니 서로 어려움을 겪은 탓인지 낯선 사람과도 얘기가 잘 되더군요. 정상에 올라 우리가 싸우면 둘 다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테고 솔직하게 그런 사정들을 말하게되면 잘 될텐데…』라고 부연.
-최근의 건대 등 국내사정에 대해….
『대단히 걱정하는 마음에서 몹시 우울했읍니다. 그래서 예정에는 없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의 루르드 성모 발현 성지에 가서 우리 나라를 위해 이틀간 기도를 했습니다.
TV를 통해 건대 사태를 접하고는….경찰들이 대학에 진입하는 것을 보니 정말 걱정이 되더군요
김 추기경은 평소 4·19 식민중궐기로 어느 누가 집권한다 해도 노동계 등 억눌렸던 계층들이 일시에 다양한 주장을 하고 나올 것이며 새 정부도 그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역시 모든 문제는 정치권의 주도로 여러 계층의 이해를 늘려가면서 점진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던 탓인지 이날도 「대화에 의한 문제해결」을 특히 강조했다.
김 추기경은 예정보다 이틀 앞당겨 귀국한 이유가 3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가톨릭 농민대회 때문인지 보도진들의 질문에 앞서 측근들에게 대회 준비 상황을 묻기도 하는 등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보도진들과 추기경의 대화가 길어지자 한 신부가 나서 『늘 해오던 원칙적인 말씀이실 뿐인데 그만하라』고 보도진을 제지해 인터뷰가 중단됐다. <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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