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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실직’에 대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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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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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왈츠·탱고·룸바·차차차·자이브. 사교댄스다. ‘지르박’이 지터버그에서 유래했다는 걸 인지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걷기에 최적화된 몸의 소유자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즐겨 보는 게 있으니 사교댄스 쇼(Strictly Come Dancing)다. 한국에선 ‘댄싱 위드 더 스타(Dancing with the Stars)’로 방영됐다. 유명인·전문 댄서들이 파트너가 돼 경연을 벌이고 시청자 투표로 매주 한 팀씩 탈락, 우승자가 정해지는 포맷이다.

 다른 육체에 대한 욕망이냐고? 오히려 같은 육체에 대한 연민일 수 있다. 두뇌 용량이 출중하며 하늘 높은 것보다 땅 넓은 걸 인지하는 족속의 한 인물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했다. 49세 에드 볼스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자였다가 노동당 내각에 참여했고 예비내각 재무장관까지 지낸, 잘나가는 정치인이었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했다.

 춤을 좀 췄겠다고? 몸을 써본 이가 아니었다. 두 차례 경연에서 두 번 다 꼴찌를 했다. 그럼에도 다들 ‘에드 볼스’를 외친다. 귀여운 카우보이가 되기도 하고 영화 ‘마스크’의 짐 캐리처럼 녹색 얼굴에 노란 양복을 입고 나와 소름 돋게도 해서다. “정치도 별로인데 춤도 별로”라던 심사위원들도 이젠 “재미로는 최고”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노력이 가상한 경우다. 하기야 그는 지난해 말 노리치축구단 단장이 되면서 여느 낙선거사들과 다른 행로를 걷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도 예상 밖 행보다. 토니 블레어나 빌 클린턴처럼 강연·컨설팅 등으로 돈을 긁어 모을 것이란 전망과 달리 무보수 후원회장이 되기로 했다. 자신이 야당 당수 시절 제안한, 15~17세 청소년들에게 사회 체험 기회를 주는 민관 프로그램을 돕는 일이다. 이를 위해 퇴직공직자 재취업 심사까지 받았다.

 이들의 행로가 인상적인 이유는 정계를 떠난 사람들의 여정을 알기 때문이다. 대개 상실감·우울감·박탈감에 사로잡힌 채 떠도는 낭인(浪人)이 되곤 한다.

 그나저나 국내 정계에서도 내년 이후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터인데 대비는 하고 있나 모르겠다. 권력 핵심부를 가리키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비정상적인 거래를 보면, 얼마 전까지 물러나지 않을 듯 기세등등했던 이들이 속으론 달랐나 싶긴 하다. 한두 명이라도 참신한 선택을 하려나. 1970, 80년대에서 튀어나온 듯한 낡음·고루함이 이 통치집단의 압도적 특성이라 썩 기대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