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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 회고록<21> 「실패한 도전」2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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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3선 개헌의 징조는 불행하게도 67년 선거에서 때 이르게 나타난다. 박대통령의 1번 승계자 김종필에 대한 견제,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의 관권·물량공세다. 그 얘기.
경기북부지역 유세를 돌고 서울에 돌아온 이튿날 조간신문에 제1차 공화당 유세는 성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었다는 기사가 크게 났어. 성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란 말은 부정 쪽이 더 강해. 나는 성공으로 보는데 어찌 이런 보도가 나나 의아한 생각도 들고…, 내가 너무 희망적으로 해석했나 하고 자생도 해보았지만 신문보도에 무언가 곡절이 있는 듯 해. 하지만 알 길은 없고 2차 유세를 계속했어. 강원도를 돌다 충주를 거쳐 대전에 갔을 때야.
우리 유세 반이 대전 공설운동장에 도착해보니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어. 내가 듣기에 너무 세세한 말, 이를테면 양송이 재배문제까지 얘기를 해. 지루한 느낌이야. 청중들도 그랬겠지. 빠져나가기 시작해. 당에선 30만이 모였다고 했는데 그 일부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니까 나가는 인파가 물결을 이뤄. 대통령도 당황했던지 뒷말을 줄이고 끝을 냈어. 그 뒤를 김종필이 올라갔어. 아마 휘몰아치는 화술이 그런걸 거야.
나가던 발길들이 되돌아서는 거야. 연설을 끝내고 우리는 대통령과 작별하고 광주로 갔어. 광주 관광호텔에서 전남 일원의 유세계획을 짜느라 밤늦게까지 김종필 방에 모여들 있었어. 아마 밤12시쯤 일거야. 대통령한테서 전화가 왔어.
대통령 말이 김종필의 유세는 성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다라고 들었는데 대전서 보니까 반응이 아주 좋다. 놀랐다. 앞으로 후보반의 대도시 유세 때는 종필이가 반드시 나오도록 하라고 했다는 거야. 그제서야 우리 유세는 성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 까닭을 알겠어. 그때까지만 해도 김종필은 따로 시골만 돌도록 되어있고 대도시의 대통령 후보유세에 김종필은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짜여 있었거든….
대통령의 지시니까 별도리 없이 김종필을 후보 반 연사로 넣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도 또 재주를 부리는 거야. 원래 연설회는 순서가 중요해. 그런데 이걸 짜는 사람들이 김 당의장은 맨 처음 연사로 넣고 시간도 10분 이내로 제한해 놓은 거야. 부산·대구가 모두 그랬다는 거야. 광주서도 그래. 원래 사회를 맡아 연사소개를 하는 건 그 지역사람이 하도록 되어 있어. 그렇다면 광주에선 전남도당의원장 김우경 군이 해야할 것 아니야. 그런데 김 군이 하면 대통령 다음으로는 김종필을 추켜세울 듯 하니까 사회자를 경북출신 당 간부로 바꿔버렸어.
이 짓을 하는 이가 누군고 하니 엄민영. 이후낙·길재호 이런 사람이야. 어디서나 이 세 사람이 하루 전 비행기로 현지에 와서 방에 모든 걸 결정해버려. 선거비용도 그래. 김형욱 정보부장·엄민영 내무· 이후락 실장· 길재호 총장, 이네사람은 선거비용을 풍성하게 쓰는데 김종필은 돈이 달려서 쩔쩔 매는 거야. 김종필이 명목은 대통령선거 사무장이야. 그런데 사무장이란 사람은 지방유세만 하고 실제 일은 길 총장이 다한단 말이야….
대통령 선거에선 예상대로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보다 2백만 표를 더 받는 압승을 했어.
곧이어 국회의원 선거에 들어가는데 내 자신 지역구도 없고 해 적극적인 의사가 없었어. 그랬는데 김종필 당의장이 내게 와서 선생님은 다시 비례대표로 모시기로 대통령과 얘기가 되었습니다 고 해. 그래 내가 그거 감사한데 서인석 군을 배려해달라 그랬어. 서 군은 내가 이후락 비서실장 경질을 건의하면서 후임으로 추천한 일이 있는데 그 때문에 엉뚱하게도 지리산 토벌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거든. 순전한 정치모략이지. 그런 박해를 받은 일도 있고 해서 내가 특별히 염려가 돼 얘기를 한 거야. 김 당의장은 유의하겠다고 승낙을 했어. 그런데 결과는 공천을 못 받았더군. 내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김종필은 올렸는데 청와대에서 거절된 것으로 봐. 김종필은 공천 권이 없었어.
국회의원 선거 때도 나는 중진 유세반의 한사람으로 지방을 돌아다녔어. 그런데 묘한 사태가 보여요. 뭔고 하니 지방 도시엘 가면 그때마다 우리가 가기 하루나 이틀 전에 내무장관 엄민영·정보부장 김형욱·당 사무총장 길재호 이 세 사람이 다녀갔다는 거야..한번도 마주치지는 않고 언제나 앞서 다녀가. 그때만 해도 당사무국 요원들이 나한테 얘기를 하던 때야. 그들 말이 장관과 부장은 행정관리에게, 총장은 후보자에게 상당한 자금을 지원하고 간 다는 거야.
우리 형편에서 행정부의 선거지원을 전격으로 막을 수는 없다하더라도 어느 선의 한계는 있어야 하는 거야. 내가 볼 적에 중앙당에서 1차, 2차로 선거비용을 대주었고 그것 이외에 특별지원도 있었고 이것만도 거액이야. 그런데 거기다 다시 거액의 돈이 나가고 국가권력 기관이 행정기관 동원을 진두 지휘하고…. 이거 낭패한 일이야. 지방을 도는 동안 중앙관서나 국영기업체 간부들도 자꾸 만나게 돼. 어제 여기 왔느냐고 물을 것도 없지. 모두 공화당후보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고 연고지로 출장 온 거야.
내가 공화당 당적을 가졌어도 당이 우위냐, 국가가 우위냐고 볼 적에 한심하기 짝이 없어.
대통령 선거 직후 김종필이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예측한 게 있어. 63년 선거 때 공화당이 1백13석을 확보했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10석 내외가 줄어드는 1백석 선이 될듯하다는 것이었지. 왜 그런 예측을 했느냐하면 63년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표 차로 이겼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선 야당이 분열돼 있어 같은 득표를 하고도 의석은 많이 얻었어. 이번에는 야당이 단일이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을 했어. 예를 들어 서울이나 부산에서 우리가 졌지만 표 차가 적었어. 그러니까 도시민이나 지식인 사이에도 공화당 지지가 늘어났다는 판단을 했어.
우리가 공명선거를 하고도 이겼다는 생각을 국민의 뇌리에 남기면 공화당 2기 통치에는 굉장한 플러스가 된다, 2기의 4년 기간 부정부패를 막고 건설적인 정책을 펴는데 성공하면 공화당은 국민정당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어. 그랬는데 선거를 놀아보니 온통 타락이고 부정이야. 이거 큰일 났구나 해서 김 당의장하고도 얘기를 했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어. 어쩔 도리가 없어….
선거 결과는 공화당이 1백30석, 야당은 45석이야. 공화당이 개헌선인 3분의2를 13석이나 넘어선 놀라운 결과야. 이거 큰일났다. 어찌하나.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야당이 부정선거 무효화 투쟁에 나섰어. 나는 이 사대를 어찌해야 하느냐는 점을 걱정했지만 대통령이 불러서 의논하는 일이 없어 내 혼자 걱정을 하다가 대통령을 찾아갔어.
선거 후 1주일쯤 뒤지. 내가 대통령을 찾아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명백히 타락선거고 부정이 많았습니다. 타락선거가 뭐냐 .여기저기 선거사범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은 어떤 선거든지 있는데 이번엔 특별히 수효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십시오.
-정치적 해결이라뇨.
정치적 해결이란 내각을 바꾸는 일입니다. 적어도 내무·법무·문교·재무·농림 등 5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바꾸십시오.
-그건 곤란합니다. 부분적으로 타락이 있었지만 투표나 개표부정은 없었습니다. 내각을 개편한다해서 야당이 누그러진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리되면 더욱 요구가 거세질 텐데요….
-…이번 선거를 두고 3위1체, 5위1체라고 합니다. 3위1체는 뭐냐하면 군수이하 행정관서· 경찰서장· 농수협 임직원을 말합니다. 3개 부가 관련되지요. 5위1체는 여기에 학교직원들과 선거사범을 방치한 검찰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앞의 3부에다 문교·법무를 합쳐 5위1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하께서 솔직히 6·8선거가 타락선거였음을 시인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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