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전통시장 소외된 ‘코리아 세일 페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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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산업부 기자

지난 10일 서울의 한 백화점. 정문 입구부터 곳곳에 설치된 안내 표지판에서 한글을 찾아보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이쯤 되면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린다. 일부 이벤트는 아예 중국인만 참여가 가능하다. 박모(46·여)씨는 “중국인 아니면 오지도 말라는 분위기”라며 “내년부터는 중국 관광객 세일로 행사 이름을 바꾸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진행 중인 백화점의 모습이다. 백화점으로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행사 기간과 국경절 연휴(1~7일)과 맞물려, 큰 손인 유커(游客)를 모시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유커 모시기에만 올인하느라 내국인이 느끼는 실망감을 모르는 척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의 취지가 관광객 유치 뿐 아니라, 내수 절벽 해소에도 방점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전통시장은 어떨까. 이번 코리아 세일 페스타 축제 기간에는 전국 1439개 중 4분의1이 조금 넘는 400여개 전통시장만 참여한다. 정부는 참여 전통시장 숫자가 지난해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에 비해 3배나 늘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전통시장이 행사 기간에도 썰렁하다는 지적이 일자, 중소기업청은 참여 시장 64%에서 매출 18.5% 증가 효과가 나타났다는 설문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하지만 이 설문이 전통시장 전체 상황을 대변한다고 하긴 어렵다. 대규모 특별할인기간에 참여한 거점시장 등 50여곳의 결과일 뿐이다. 다른 곳의 상황은 달랐다. 남대문시장은 행사 막판인 12일부터 참여하지만 상인들은 관심이 없었다. 11일 만난 상인은 “인근 백화점에 사람이 몰려, 오히려 평소보다 손님이 뚝 끊겼다”며 “지금도 도매가로 물건을 내놓는데, 여기서 더 깎을 여력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29일 시작된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이달 말까지 한류문화체험·외국인 특별할인 행사로 이어진다. 중간 성적표만 놓고 보면 지난해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에 비해 발전한 측면도 적지 않다. 제조업체가 행사에 참여해 할인율을 최대 80%까지 높였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3사의 매출도 지난해 대비 5~9% 증가했다.

하지만 성과만큼 한계와 보완점도 눈에 띈다. 유커의 지갑을 여는 만큼 국내 소비자의 마음을 여는 것도 중요하고, 전통시장의 소외감도 어루만져야 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행사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이 부분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고민이 있어야 한다. 매출이 올랐다는 정량적 평가에 가려진 불만과 한숨을 외면해선 안 된다.

장주영 산업부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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